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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박중현 칼럼]이재명 대표, 이젠 ‘경제 공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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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압승 후 달라진 발언의 무게

주변에 공인받은 경제 전문가 드물어

물가-금리-환율 ‘정치적 이해’가 문제

이념에 치우친 지식 오류 바로잡아야

동아일보

박중현 논설위원


22대 총선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 한마디 무게가 선거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워졌다. 175석의 국회 1당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과 관련한 발언의 의미도 달라졌다. 이전 발언들이 유력 야당 정치인의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면, 이젠 정부 여당이 반발하면 ‘처분적 법률’을 만들어서라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그런데도 그의 경제 관련 발언을 해독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라 안팎의 경제 사정이 급변해도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체계적 학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념에 치우친 지식이 뿌리 깊게 입력된 탓으로 보인다.

당장의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인식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민주당은 1호 법안으로 이 대표의 총선 공약인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부터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한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이구동성 반응은 ‘물가가 불안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심지어 민노총까지 한목소리로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중동 분쟁 등으로 대외 변수가 불안한 상황에서 13조 원을 풀면 물가가 다시 들썩일 거란 예상은 경제의 기초 상식에 속한다. 이 대표는 “소양강 호수에 돌 하나 던졌더니, 수위가 올라가서 댐이 넘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며 슬쩍 피하려 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억누르는 와중에 13조 원을 푸는 건 돌멩이 하나에 견줄 일이 아니다.

‘금리’ 문제로 넘어가면 이 대표의 경제 인식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는 서민을 힘들게 하는 고금리에 극단적 적대감을 내비쳐 온 정치인이다. 2020년에는 최고 금리를 24%에서 20%로 낮추려는 정부에 “적정 수준은 11.3∼15% 정도”라며 ‘적정 이자’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법정이자 상한 때문에 대부업체의 대출도 못 받은 서민들이 불법 사채업의 희생양으로 떠밀린다는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이 빗발쳐도 생각을 바꾼 적이 없다.

이 대표가 고집하는 13조 원의 지원금은 시장금리를 높이고, 고금리를 연장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정부가 국채를 더 찍어내면 금융시장에서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반대로 국채 금리는 올라간다. 국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시장 금리 역시 덩달아 높아져 빚을 진 서민과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커지게 된다. 1억 원을 빚진 가구라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한 해 이자로 10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앞에서 받은 지원금이 뒤에서 금융회사 대출이자로 빠져나가게 된다.

환율까지 고려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2%포인트 높아 강달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돈을 풀어 통화량을 늘리면 원화가치는 떨어질 공산이 크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100% 수입하는 원유는 물론이고, 금(金)사과 대신 해외에서 수입하는 바나나 등 서민용 과일 값까지 오른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는 그의 돈 풀기 공약 때문에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의 재정적자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질 거란 지적에 “한국이 곧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란 터무니없는 발언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에게 국제통화 문제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은 과도한 걸까.

경제 작동 원리와 괴리된 남다른 상식의 소유자가 정책 결정권을 가질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 사회는 이미 경험했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논리’로 비판받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끌어올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몰락을 재촉했다. 정치 지도자가 경제 원리에 배치되는 신념을 가질 때의 해악은 튀르키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자를 죄악시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물가가 오르는데 금리를 낮춰 대응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화정책 후유증으로 튀르키예 국민은 60%대 물가 상승, 리라화 가치 폭락에 신음하고 있다.

이 대표 주변에선 널리 인정받는 출중한 경제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경제원칙에 어긋나는 정책, 주장을 논리적으로 백업할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의원 가운데 경제 전문가 숫자도 21대 때보다 줄었다고 한다. 잘못된 경제정책이 추진될 때 바로잡을 이들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대표가 때론 포퓰리스트를 자임하다가, 정부를 비판할 땐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 있다”는 식의 이해 못 할 말을 할 때마다 국민은 당혹스럽다. 격상된 정치 위상에 걸맞게 제대로 된 가정교사를 들여 경제 공부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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