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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의대 증원 37번 논의하곤 ‘회의록 오락가락’… 불신 자초하는 정부 [기자의 눈/조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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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유라·정책사회부


법원이 정부에 의대 증원 2000명이 어떻게 결정되고 배분됐는지 근거 자료와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한 게 지난달 30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감시한을 사흘 남긴 7일까지도 어떤 자료가 있고, 이 중 어떤 자료를 제출할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며 불신을 자초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 및 배정과 관련해 운영한 회의체는 의료현안협의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전문위), 정원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 등 4개다.

보건복지부는 이 중 전문위 회의록을 두고 5일 “의결 기구가 아니라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회의 결과를 정리해 둔 건 있다. 제출 여부는 밝힐 수 없다”(6일), “작성·보관 중인 회의록을 법원에 제출하겠다”(7일) 등으로 계속 말을 바꿨다. 교육부 역시 배정위 회의록에 대해 “회의록이 있다”(4일)고 했다가 “회의록 존재 및 제출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5일), “회의 내용을 정리한 건 있다”(6일) 등으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차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 △법에 따라 구성된 위원회·심의회 등이 운영하는 회의 △국장급 공무원 3명 이상이 참여하는 회의 △회의록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의 경우 회의록을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정부는 보정심과 전문위의 경우 법적으로 회의록 작성 대상이지만 의료현안협의체와 배정위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의료현안협의체의 경우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녹취와 속기록 작성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모두발언만 공개하고 회의 후 보도·참고자료 배포 및 합동 브리핑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회의도 주요 회의인 만큼 회의록을 작성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의사 증원은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이고, 법원이 아니더라도 향후 누군가 의사결정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의사단체에선 정부가 입장을 계속 바꾸는 걸 두고 뒤늦게 없던 회의록을 새로 만들어 법원에 제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정부의 갈지자 행보가 공세의 빌미를 만들어 준 셈이다. 7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렸다고 하는데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숨기고 싶은 내용이 있었거나 비합리적인 결정이 이뤄졌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가 의사단체 등과 37차례 의사 증원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증원 협의가 투명하게 진행됐고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졌다면 37차례 회의에 누가 참석해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법적 의무를 떠나 학급 회의를 해도 회의록을 남기는 게 일반적 상식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금 되새겨야 할 건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오랜 격언이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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