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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베토벤이 20년만 더 살았으면 색소폰 곡 썼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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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브랜든 최가 4월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4.26.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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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브랜든 최가 색소폰을 잡는 과정도 그랬다.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학내 윈드 오케스트라가 환영 연주를 들려줬다. 브랜든 최는 특히 금빛으로 빛나는 악기에 홀딱 반했다. 선배 동아리원이 “여러분도 단원이 될 수 있다”고 인사하자, 브랜든 최는 곧바로 동아리로 달려갔다. 플룻, 트롬본, 클라리넷, 튜바 중에서도 오직 색소폰이었다. 최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브랜든 최는 “딱 내가 좋아하는 소리였다. 금색으로 빛나니 더욱 아름다웠다”고 돌이켰다.

고등학교 시절 취미로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도 있다. 문제는 브랜든 최가 색소폰을 전공으로 삼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일어났다. 학교와 부모 모두가 반대했다. 브랜든 최는 “극심한 반대의 장벽을 넘기 위해” 시험 때 OMR 카드에 하나의 번호만을 마킹하는 ‘반항’을 감행했다. 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니”라고 묻자 브랜든 최는 “네”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곧바로 전공용으로 연주할만한 좋은 색소폰을 사주셨다.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당시 가장 친한 친구가 더블베이스를 전공했다. 그 친구의 외삼촌이 서울시립교향악단 안동혁 더블베이스 수석이었다. 안동혁 수석은 조카에게 서울시향 공연 티켓을 주곤 했다. 브랜든 최와 친구는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예술의전당의 서울시향 공연에 자주 다녔다. “그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처음 듣고 완전히 매료됐거든요. 악기로는 색소폰을 먼저 만났지만, 이후 색소폰의 역사가 클래식 음악에 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감사한 우연의 연속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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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브랜든 최가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4.26.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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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옹 국립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 미국 신시내티 음대 박사 과정을 거친 브랜든 최는 이제 한국에서 보기 드문 클래식 색소포니스트가 됐다. 2022년 라흐마니노프 음반에 이어 최근엔 베토벤 곡만을 녹음한 음반을 냈다. 여러 클래식 작곡가의 곡을 찾고 연주해본 끝에 결정한 일이다. 색소폰에 어울리는 베토벤 곡을 선정하는데만 반 년이 걸렸다. 색소폰 용으로 악보를 만들고, 색소폰 음역대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도 거쳐야 했다. 브랜든 최는 “베토벤이 색소폰을 모르고 세상을 떠서 너무 안타깝다. 베토벤이 20년만 더 살았더라도 분명 색소폰의 매력을 알고 이 악기를 위해 작곡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음반에는 로망스 2번, 호른 소나타, 첼로 소나타 3번,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 등이 담겼다. 첼로 소나타의 경우 악장마다 음역대가 다르다. 첼로는 하나로 연주하지만, 색소폰은 3대를 사용했다. 낮고 거친 음역대가 나오는 1악장은 바리톤 색소폰, 날렵한 리듬감을 선보여야 하는 2악장은 테너 색소폰, 빠른 템포로 고음역대 연주를 해야 하는 3악장은 알토 색소폰을 썼다.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 때는 악장마다 옆에 세워둔 색소폰을 바꿔들었다. 브랜든 최는 “베토벤과 클래식 색소폰을 시공간을 초월해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며 “베토벤이 투병한 뒤 신의 계시를 받고 작곡한 듯한 느낌의 곡이 많아 몽환적이면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연주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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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브랜든 최가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베토벤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2024.4.26.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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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은 1840년대 벨기에의 악기 제작자 아돌프 삭스가 개발한 악기다. 주로 대중음악, 재즈 악기로 여겨지지만, 클래식 작곡가들이 남긴 곡도 있다. 라벨, 무소르그스키, 베를리오즈, 드뷔시, 쇤베르크가 곡에 색소폰을 활용했다. 브랜든 최는 “색소폰은 목관악기의 부드러움, 금관악기의 웅장함, 현악기의 유연함을 모두 갖춘 악기”라고 말했다. 일본, 유럽, 미국에는 클래식 색소폰 솔리스트가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클래식 색소폰 전공자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브랜든 최는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더욱 많이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운영중이다.

모든 면에서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재작년에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몇 달을 쉬면서 자신의 삶과 연주를 돌아봤다. 그는 “수술 이전에는 무식하게 연습했다. 새벽까지 연습하다 연습실에서 자는 날도 많았다”며 “이젠 오전에 연습하고 오후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음악에도 깊이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브랜든 최는 앞으로 색소폰을 위한 곡들을 쓴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곡들에도 본격적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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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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