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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이태원 참사

‘눈물의 카네이션’···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두 번째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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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어버이날을 맞은 8일 서울광장 이태원참사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온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에서 맞는 2번째 어버이날 행사’ 중 시민사회단체 소속 학생들이 유가족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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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8일 거리 위에서 참사 이후 두 번째 어버이날을 맞았다. 유가족들은 딸·아들뻘 청년들이 왼쪽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주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어버이날인 이날 서울 중구 이태원참사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유가족들과 청년들이 함께하는 어버이날 행사가 열렸다. 기본소득당·청년진보당·진보대학생넷 소속 청년 30여 명이 참석했다.

유가족 측에선 희생자 어머니 3명과 아버지 5명이 나왔다. 지난해 어버이날에 유가족 20여 명이 참석한 것에 비해선 단출해졌다.

청년들이 준비해온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자 유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이 속절없이 흘렀다. 한 어머니는 카네이션을 건넨 청년을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청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고 최다빈씨 아버지 최현씨에게 꽃을 달아드린 윤김진서씨(27)는 “앞으로 저희가 더 곁에 있을 테니 울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어버이날 행사 이후 부모님들이 한 달을 힘들게 지냈었다”며 “(올해도) 고통스러운 기억에 도저히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는 “울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하나뿐인 딸의 방에 들어가 한참을 울고 집을 나섰지만 오늘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카네이션을 들고 퇴근하는 청년들을 보며 가슴이 아렸다고 했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아빠’ 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더라”며 눈물지었다.

경향신문

어버이날을 맞은 8일 서울광장 이태원참사희생자분향소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온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에서 맞는 2번째 어버이날 행사’ 중 시민사회단체 학생들이 유가족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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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올해 어버이날은 지난해와 다르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고, 하늘로 떠난 아이들이 열심히 싸워온 부모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편지를 낭독하며 특별법 통과로 시작될 진상규명의 여정을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새봄 진보대학생넷 대표는 “세월호 세대인 우리는 정부·언론·기관이 나서 진상규명을 막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며 “법이 통과됐다고 진실이 밝혀지는 걸 알기에 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현 진보대학생넷 활동가는 “저희의 미래를 대신해 분투해주시는 어머니·아버지에게 언제나 부채감을 느낀다”며 “함께 할 테니 부디 건강히 오래도록 머물러주시라”고 했다.

카네이션을 주고받은 유가족과 청년들은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백휘선씨(26)는 “카네이션을 다는 것은 상대를 존경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한다”며 “어머니와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나눴다”고 했다.

김진현 진보대학생넷 활동가의 편지

이태원참사 유가족 어머니, 아버지께.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세요. 어느새 또다시 5월이 찾아왔네요. 건강은 잘 챙기고 계실까요?

저번 주 목요일, 드디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너무나 기쁘고 먹먹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당연한 요구를 이렇게까지 해야만 듣는 시늉을 하는 정부가 도저히 이해되질 않고, 또한 참사가 일어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흐르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났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되었네요. 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 아버지께서 참 많은 일들을 해오셨다는 것을 알아요. 폭우 속에서 삼보일배를 하시고, 한겨울에 오체투지를 하시고, 또 강추위 속에서 1만 5천 900배를 하시고. 이것 말고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시며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셨죠. 그런 어머니 아버지의 강인하고 치열한 모습들을 볼 때면 늘 저 역시도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저의 미래를, 제 친구들의 미래를 위해 대신해서 분투해주시는 것에 언제나 부채감을 느껴 저 역시 잊지 않겠다고 함께하겠다고 부러 크게 말하고 다짐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쉽게 잊고 마는 안일하고 부끄러운 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당신보다 언제나 더 먼저 저희들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에 기대어,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 말씀드려봅니다.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되고,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온전히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그 당연한 권리를 돌려받으실 때까지요.

지름길이 없는 이 여정 속에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저 역시도 늘 어머니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부디 아주 건강히 저희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주세요. 많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5월 8일



☞ “진상규명 첫 걸음”···이태원참사 특별법 통과에 울고웃은 유가족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405021705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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