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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일본 ‘잃어버린 3년’의 면역…“엔데믹 뒤 어린이 감염병 2∼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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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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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10년 만에 환자가 가장 많았던 이례적인 여름이었다.”



일본 도쿄도 도립 어린이종합의료센터의 호리코시 유호 감염내과 과장은 지난해 여름 몰려든 환자들로 진땀을 뺐던 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발열과 기침 증상을 호소하는 어린이와 부모들이 응급실로 몰려들었고,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병원이 미어터지다시피 했다. 환자들이 대기실과 로비를 넘어 주차장까지 장사진을 치는 일이 벌어졌다. 환자들이 의사를 만나기 위해 3∼4시간씩 기다리기도 했다.



지난해 5월8일, 일본 정부가 코로나19를 감염병법상 다섯번째 낮은 등급인 ‘5류’ 질환으로 재분류해, 엔데믹(풍토병화)을 공식화하고 불과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8일 “코로나19가 감염병법상 5류 질환으로 전환되면서 감염 방지 대책은 ‘개인의 판단’이 됐다”며 “이후 이 센터 소아과에 (코로나19를 포함해) 각종 감염병의 파도가 몰아쳤다”고 전했다. 실제 이 센터에는 알에스(RS) 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 호흡기 감염 환자와 수족구병, 코로나19 감염 환자까지 가세해 7월께 예년의 3배에 이르는 하루 300여명 어린이가 응급실을 찾았다. 호리코시 과장은 “소아과의 경우, 그렇잖아도 여름방학을 이용해 수술·입원하는 환자가 많은데 감염병이 겹치면서 병상이 상당히 부족했다”고 힘겨웠던 지난해 여름을 되돌아봤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이후 3년여간, 어린이들이 병원체와 접촉해 일상에서 면역 능력을 키울 기회를 잃어버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아사히신문은 “일부 어린이 감염병은 과거와 견줘 2~3배 많은 감염자 수가 보고되는 등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또 영유아가 많이 걸리는 알에스 바이러스 감염증은 일반적인 유행 시기인 여름~가을이 아닌 봄에 유행이 시작돼 7월에 환자 수가 정점에 이르렀던 것으로 집계됐다. 계절성 독감 역시 한 계절 이른 가을 유행이 시작됐다. 니가타대 의대 사이토 아키히코 교수(소아감염학)는 “코로나19 당시, 외출을 자제하고 손 위생과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는 등 감염 대책으로 아이들이 병원체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면서 손쉽게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봤다. 때 이른 호흡기 환자들이 급증하는 현상이 당분간 반복될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코로나19 여파가 완전히 종식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2022년 말 일본에서 코로나19가 여덟번째 유행한 ‘8차 파동’ 당시 의료기관 1곳당 1주일간 신규 감염자 수는 30.3명이었는데, ‘9차 파동’ 때인 지난해 8월에는 이 수치가 20.5명, 지난겨울 ‘10차 파동’ 때는 10.6명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국립감염증연구소 감염병역학센터 스즈키 모토이 센터장은 엔데믹 전환 뒤 “2022년과 견줘도 신규 감염자 수는 높지 않다”면서도 “증상이 있어도 환자들이 열심히 진료 받지 않거나, 의료기관 역시 적극적인 검사에 나서지 않는 등 환자와 의료진의 행동 변화에 따른 요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지금도 코로나19 탓에 젊은 사람이 경우에 따라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고령자 등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일반 감기와는 다르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고령자나 기저질환이 있는 60~64살 등 어르신은 정기 예방접종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새로운 변이의 출연으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양상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금까지 나온 변이에 대해서는 백신과 항체의약품이 효과를 내왔지만, 언젠가 신종 감염병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감염병 위기관리 총괄청’을 출범시켰고, 2025년 4월에는 새 전문가 조직인 ‘국립보건위기관리연구기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위기상황에 빈 병상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지역별 의료기관들끼리 협약을 맺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이세키 도모토시 조사이대 교수(행정학)는 “(일본 전체 병원의 80%를 차지하는) 민간 병원에 동기를 부여하려면 보조금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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