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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논쟁 하니] ‘현금 1억 지원’에 아이 낳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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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몇몇 사기업과 지자체가 신생아 1명당 현금 1억원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제도까지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텅 빈 신생아실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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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하니(hani)’ 두번째 주제는 ‘출산장려정책, 현금 1억원 지급’에 대한 찬반 논쟁입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에서 지난해 0.72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급기야 몇몇 사기업과 지자체가 신생아 1명당 현금 1억원 지급이라는 파격적인 제도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사자 격인 자녀가 없는 기혼 여성 두명의 찬반 의견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래서 찬성합니다”





“개개인 따라 활용 못하는 정책과 달리 혜택 동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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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 결혼 7개월,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팀장



대한민국이 저출산 문제로 심각한 인구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민간기업과 지자체에서 제시한 1억원의 출산지원금 제도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여전히 합계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발적인 정책보다 1억원 지급 정책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경제지원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출산 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주거난, 고용불안, 노후 빈곤에 대한 사회적 보장 등의 사회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정책이 자리잡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르면 출산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로 자녀 보육비, 교육비 부담을 꼽았다. 그리고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30’에서도 역시 20~30대가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가장 주된 이유로 ‘경제적 여건’을 꼽았다.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일자리, 교육, 주택, 돌봄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있다. 결국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물가 안정, 고용불안 해소, 부동산 안정 등 사회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오래전부터 정부 각 부처는 저출산 대책을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았다. 워킹맘 지원강화, 신생아 특례대출, 고운맘카드와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존의 저출산 정책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출산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보장제도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는 보편적 지원책이 될 수 없다. 즉, 워킹맘이 아닌 여성도 있고, 난임부부가 아닌 경우도 있듯이 각자 처한 여건과 환경에 따라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출산 꺼리는 주된 이유 ‘경제 여건’
‘1억원 정책’ 직접적이고 효과적

이제는 보다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최근 저출산 정책은 단순히 출산만을 장려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세대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아이 낳기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인천시의 ‘1억+아이드림’ 출산정책, 충북 영동군의 ‘1억 성장 프로젝트’ 출산정책 등이 그것이다. 출산과 육아, 돌봄 과정에서 들어가는 경제적 요소를 해결해줌으로써 청년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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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4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 대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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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정책’은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활용하지 못하는 정책과 달리 모두가 동등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출산장려금 지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양육과 돌봄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폴란드의 ‘500+’ 정책이 있다. 폴란드는 2016년부터 이 정책을 통해 두 번째 자녀가 태어나고 18살이 될 때까지 매달 500즐로티(약 17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이 정책을 통해 폴란드의 출산율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폴란드의 평균 월 소득이 약 5000즐로티(약 17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월 평균 소득의 10%를 제공받는 셈이다. 가계 입장에서는 중요한 경제적 지원이며, 자녀 양육비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경제적 인센티브는 장기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폴란드, 둘째 낳으면 매달 17만원
효과 검증된 정책에 집중하고 지원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역대급으로 급감하고 있다. ‘인구감소 시대’를 넘어 ‘인구소멸 시대’로 치달으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제는 보여주기식으로 나열된 정책을 걸러내어 효과가 검증된 정책에 집중해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자녀를 안심하고 기를 수 있는 환경까지 두루 갖춰진다면 아이와 어른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다.



출산과 양육에 1억원이 적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비를 고려했을 때 1억원으로 모든 경제적 부담이 해소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나라가 그 부담을 함께 짊어진다는 상징성이 있다. “앞으로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고문보다는 1억원 지급과 같이 피부에 와닿는 정책으로 청년들의 짐을 나눠야 한다.



“이래서 반대합니다”





아이, 돈만 있으면 자라는 쉬운 생명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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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 결혼 12년차 39살 여성



출산은 개인의 영역일까, 사회의 영역일까? 아이를 가지게 되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상황이 급변한다. 아이, 그리고 부모를 둘러싼 모든 사회 영역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출산은 개인이 자유의지로 결정한 사회적 선택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출산장려 정책은 개인이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드는 동기를 충분히 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기꺼이 나의 아이가 세상을 경험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사회여야 출산이 자연스러운 부모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현금 1억원 지급은 충분한 동기가 될 수 있을까? 1억원은 알뜰하게 쓴다면 아이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키워낼 수 있는 금액이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1억이라는 숫자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가려져 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1억원의 대부분은 돌봄, 의료, 교육 등에 집중적으로 쓰일 것이다. 아이들은 병원에 가야 하고, 또래 친구들을 만나야 하고, 발달 시기에 맞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개인이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소아과 전문의가 사라져 아이들이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하고,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과정도 어려운 데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사교육이 필수가 된 현실은 우리나라의 가장 기이한 단면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경제적 지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육아사업 분야의 인플레이션 우려

1억원 돈으로 해결 못할 문제 많아



돌봄도 온전히 부모의 몫이 되는 상황인데, 이를 개인 비용으로 여길 게 아니라 공동으로 안전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상의 제도로 확보하는 편이 더 영리한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1억원이 주어졌을 때, 출산과 육아 사업이 어떤 식으로 경제의 지형도를 바꿔나갈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의도치 않은 육아사업 분야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자본이 있는 곳에는 항상 틈새를 노린 편법이 존재한다.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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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월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미래세대 자문단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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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시작된 국가의 저출산 정책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성격의 경제적 지원으로 나뉜다.



첫째, 가정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 경제적 지원으로 신생아 특례 대출, 청약자격 완화, 고운맘카드, 출산 크레딧, 아동수당 지원 등이 있다. 주거와 의료 지원을 골자로 한다. 특히, 높은 주거 비용은 결혼과 출산의 가장 큰 장벽이다. 부동산 투기, 전세 사기 등 주거의 안정성을 해치는 범법행위에 대한 개선도 같이 병행돼야 한다.



둘째, 부모의 직장생활을 보조해주는 수단으로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두고 있다. 이는 고용이 안정된 상황에서만 가능한 선택이므로, 부모의 소득수준과 고용 형태에 따라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일관되고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다양하고 세밀한 방식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효과가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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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18일 국회에서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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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근간의 가치부터 바로 잡아야
사회가 건강하게 살고픈 곳이면 돼

기존 정책은 아이를 ‘돈’만 있으면 자라는 쉬운 생명으로 여기고, 투자하면 사회에 필요한 일꾼이 되리라는, 조악한 희망에 기댄다는 인상을 떨쳐내기 힘들다. 출산율 저조로 나라가 망해간다는 조급함만 있고, 그 안에 사람이 빠져있는 것은 외면하는 공허한 울림이다. 아이도, 여성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라면 어디서부터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2016년 12월, 행정자치부에서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가임기 여성들을 아이 낳는 기계로 수치화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저출산 정책은 정체되거나 뒷걸음질 쳐왔다. 2024년의 대한민국이 출산기피 지역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존 정책을 해부해서 장단점을 파악하고, 정책 근간의 가치부터 바로 잡아야만 작은 변화라도 일어날 수 있다. 즉, 시작 좌표를 다시 설정해야만 한다.



출산율이 저조해 인구소멸로 나라가 망하는 건 서서히 닥쳐오고 있는 미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일매일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기도 벅차다. 오늘의 현실이라도 숨 돌리고 살아가기 위해 아이를 포기하기도 하고, 아이 한 명으로도 헐떡이는 세상에 자주 주저앉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살고 싶은 곳이면 된다. 그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자연스럽게 많이 태어나고 자라날 것이다. 이미 행복한 아이와 부모가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굳이 긴 설득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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