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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방심위가 앞세우는 ‘공정성’…미국이 37년전 폐기한 이유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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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2월6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차 방송심의소위원회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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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 언론사회학박사·80년5월민주화투쟁언론인회 대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방송 심의 규정 9조 ‘공정성’ 조항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방송사 보도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등 여권을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 류희림 위원장 체제의 방심위는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양쪽의 방송 시간과 각종 토론 프로그램의 성향별 패널 수를 똑같이 맞춰야 한다는 ‘기계적 중립’을 강조해왔다. 방심위는 이를 어기면 공정성 위반이라고 해석하면서 문화방송(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 등 정부 비판 보도 대부분을 이 이유로 징계했다. 방심위는 방송과 통신의 내용을 심의하는 기구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8년 설립된 뒤 공정성 심의를 놓고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뉴스 공정성은 언론의 핵심 가치이지만, 공정성이 십인십색, 백인백색으로 정의될 만큼 복잡하고 다양해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프시시)는 1987년부터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에 의한 심의를 중단했고 2011년 법령에서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시청자나 청취자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공정성 원칙을 도입했지만, 그 시행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및 방송의 자율성 침해와 같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공정성 심의를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에프시시는 1949년 방송을 통해 다양한 견해가 공정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송 심의에 공정성 원칙을 시행했다. 이 원칙은 방송국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한다는 것을 전제로, 방송국이 특정 정치적 견해만을 단독으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공공 이슈에 대해 다양하고 상반되는 견해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에프시시는 1987년까지 방송의 공정성 원칙을 시행하면서 방송사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주요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견해를 함께 제시하는 등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뤄야 하고, 정직하고 정당하며 균등하게 보도할 것을 요구했다. 방송사는 반대하는 견해에 동일한 시간을 제공치 않는 등의 이유로 무거운 제재를 받았다. 그 결과 부작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방송사들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치적 문제를 기피하는 자기 검열을 일삼게 되었다. 이 때문에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공정성 원칙이 미 헌법에 저촉한다면서 그 폐기를 주장했다.



결국 에프시시는 1987년 공정성 원칙이 미 수정헌법의 언론 자유 보장을 위배하고 주요 문제에 대한 다양한 토론 등을 권장하기보다 억제하는 등 비생산적인 측면이 강하다면서 이를 폐기했다. 공정성은 ‘논쟁’의 대상이지,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에 백기를 든 것이다. 이후 미 방송사에서 동등하게 시간을 배정하는 원칙은 선거 관련 방송에서 주로 지켜지고 있다. 공정성 원칙을 폐기한 뒤 재도입 필요성 등도 제기되었지만 미 의회는 2011년 6월 공정성 기준 조항에 대한 기록을 에프시시 법령집에서 완전히 삭제하도록 결정했다.



에프시시의 공정성 원칙 도입이 가져온 주요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보도를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특정 관점을 강조하거나 특정 집단에 편향된 방송을 유발한다 △방송 사업자들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언론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해 언론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특정 관점을 억압할 수 있다 △방송 사업자들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방송 시간을 제공하도록 요구하면서 방송사 간 경쟁을 심화시키거나 시청자들이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한다 등이다. 이상과 같은 부작용을 주목한 에프시시가 40년 가까이 시행하던 공정성 원칙을 폐기하고, 그에 대한 재도입 논의 등에 미 의회가 쐐기를 박은 것을 살필 때 우리나라도 공정성 조항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등장한 방심위는 주로 공정성 기준을 앞세워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통제’하고,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검열’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편파 심의’ ‘정치 심의’ ‘고무줄 심의’ ‘청부 심의’ 등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공정성 규정 심의 조항이 규정한 기준이 모호한 데서 비롯한 결과다.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유리하게 하거나’(제9조3항),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제9조4항) 등의 조항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 판단과 해석이 엇갈릴 수 있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이런 점들을 살필 때 22대 국회는 방심위의 공정성 규정을 폐지하는 등 심의기구의 정치적 중립을 담보하도록 제도적 수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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