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재벌 총수 '동일인 지정' 피하려는 이유 [마켓톡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정연 기자]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7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대기업 집단의 동일인으로 외국인·법인을 지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예외 조항을 신설해 총수에서 제외할 수 있는 방법도 생겼다. 이에 따라 5월 셋째주 공정위가 발표할 대기업 집단과 동일인 명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셋째주에 진행하는 2024년 재벌(대기업 집단)과 그 총수(동일인) 지정을 앞두고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총수 지정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적 차별 없이 수범자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동일인 판단기준을 명문화해 명확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동일인 지정의 배경= 동일인 지정은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규제하는 출발점이다. 공정거래법이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데 있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 활동의 시작점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196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특정 가족이 여러 회사를 지배하는 재벌 체제가 등장했다. 이 재벌의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동일인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들의 집단'이다. 동일인을 기준으로 친족의 범위가 정해지고, 일가 기업들간 출자 등 규제도 이뤄진다.

공정거래법을 도입한 1975년과 지금의 상황이 다른 만큼 대기업 집단과 동일인 지정 기준을 현재 상황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이 지속하면서 재벌을 결정하는 기준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자산 규모는 1987년 4000억원에서 현재 5조원으로 커졌다.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975년 10조원대에서 2023년 2236조원으로 220배 이상 증가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력 집중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오히려 악화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현재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자산 10조원 이상이면 지정된다.

이렇게 기준을 높였지만 2017년 57개였던 공시대상 대기업 집단 수는 2021년 71개에서 2023년에는 82개로, 상호출자 제한 대상인 대기업 집단 수는 2021년 40개에서 2023년 48개로 증가했다.

언급했듯 동일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지분율이 아닌 '사실상의 지배력'이다. 동일인은 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사업 내용을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업 내용은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이나 계열사 대표 임명 등 경영상 중요한 사항을 말한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 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 동일인 일가의 실제 지분율은 평균적으로 3%대에 불과했다. 동일인의 지분율은 1%대다. 그래서 등장한 게 '사실상의 지배력'이다.

이론적으로는 동일인 일가가 지배구조 최상단 기업의 지분율을 30% 이상 소유하면 지배력을 인정하지만, 다른 주주들이 결집해 동일인 일가보다 더 큰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서도 '사실상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 등으로 표현한다.

■ 달라진 동일인 지정의 의미=이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그 취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대기업 집단 선정 기준이 구체성을 갖췄지만, 지정 기준을 완화하거나 강화했다고 보기는 힘들어서다. 결국 동일인 지정에서 새롭게 추가한 예외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취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조건을 충족할 경우 대기업 집단의 요구대로 자연인인 총수가 있어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외국인도 동일인에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동일인에서 빠질 수 있는 예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총수가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지 않고, 총수의 친족이 계열사에 출자하지 않고, 총수의 친족이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총수 및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간 채무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어 사익편취 우려가 없다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지정한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 경우는 김범석 쿠팡 창업자 정도다. 다만, 이렇게 해서 총수가 법인이 된다고 해도 관료련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하면 공정위가 총수를 다시 지정할 수 있다.

결국 공정위가 예외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5월 셋째주에 발표할 대기업 집단과 동일인 명단에서 총수 이름이 모두 법인으로 교체될 수도, 오히려 추가될 수도 있다.

총수가 동일인 지정을 피하려는 이유는 책임이 무거워서다. 동일인 규제는 크게 네가지다. 첫째,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지정자료를 제출할 책임을 져야 한다. 공정위는 2020년 네이버의 총수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현 직함)가 지정자료를 허위로 제출했다며 고발했다.

이해진 GIO는 2015년 본인 회사인 지음, 친족 회사인 화음 등 20개 계열회사를 지정자료에서 누락해 고발당한 적도 있다. 2017년과 2018년엔 지정자료에서 비영리 법인 임원이 보유한 8개 계열회사 자료를 누락한 행위로 경고 조치를 받았다.

더스쿠프

[사진=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둘째,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해외 계열사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동일인이나 친인척인 특수관계인이 발행주식총수의 20%를 소유한 해외 계열사의 경우 회사의 명칭, 대표자, 소재국, 사업 내용, 주주 현황, 순환출자 현황 등을 연 1회 공시해야 한다.

셋째,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가 금지 의무가 부과된다. 동일인과 친족이 발행주식총수의 20% 이상을 소유한 회사나 그 계열사가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기업은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과 거래할 때 부당한 사업 기회나 이익을 제공할 수 없다.

넷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동일인이 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자회사나 다른 국내 계열사간 채무보증을 해소할 의무가 있다. 동일인은 채무보증을 해소했다는 증빙 서류를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