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런던으로 간 무림 [책이 된 웹소설: 천마홈즈 런던앙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상훈 기자]
더스쿠프

익숙한 소재를 함께 쓰는 건 뜻밖의 낯선 이야기가 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예술적 기법에는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친숙한 것에서 새로운 자극을 얻기 어렵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지루하고 매일 같은 반찬으로 식사하면 금방 물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서는 '낯섦'이 필요하다. '낯설게 하기'는 친숙한 것들을 창작자의 표현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자극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자! 이제 웹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웹소설은 통상 장르적 관습을 따른다. 일종의 규칙을 정해놓고 그 규칙 내에서 창작한다. 이런 특징 탓에 낯선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웹소설은 클리셰를 뒤집고 장르를 파괴한다. 장르적 관습 내에서 어떻게 낯설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작가들도 많다.

'옴니버' 작가의 웹소설 「천마홈즈 런던앙복」이 대표적이다. 이는 익숙한 소재를 작가 특유의 유쾌한 '뻔뻔함'으로 낯설게 만든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셜록 홈즈다. 코난 도일 작가의 유명 추리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동명 주인공에서 차용했다. 홈즈는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영화나 드라마로 존재를 접했을 유명인이다.

작가는 홈즈를 '런던 무림武林'이라는 아주 기이한 장소에 배치한다. 이 세계의 런던은 17세기부터 동양과의 교류로 무공이 발전했다. 무협 소설의 배경인 무림은 보통 중국 어딘가에 위치한다. 이 소설에서는 무림이 통째로 런던으로 옮겨왔다. 작품 속 런던에서 무공은 신사 숙녀의 교양 취급을 받는다. 온갖 무공을 익힌 각종 문파가 활약한다. 심지어 영국 여왕도 무공을 익힌 고수다.

작품은 원전 '셜록 홈즈'의 이야기를 따라가되 무협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원전에서의 살인사건이 작품에서는 무공을 사용한 살인사건으로 변하는 거다. 이야기 초반부를 빛내는 것은 작가의 뻔뻔함이다. 작가는 '런던 무림'이라는 배경이 얼마나 독특한가 보여주려 한다. 특히 독자는 무협 용어를 영어로 표기한 부분에서 실소를 참기 어렵다.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다니던 책들은 내 손에 쥐어질 때마다 급격히 무게를 더했다. 마치 천근추 1322.77 Pound Weight를 펼치기라도 한 것처럼. 「천마홈즈 런던앙복」 중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협에서 천근추千斤錘는 몸을 1000근처럼 무겁게 만드는 무공이다. 작품은 근을 파운드로 환산한 후 당당하게 영어 병기를 1322.77 Pound Weight로 적어놨다. 물 위를 걷는 무공인 등평도수登萍渡水는 Jesus Walk로, 비상식량인 벽곡단은 Oatmeal Ball로, 무협의 배경인 중원中原은 Midfield로 표기한다. 이 표기들은 때때로 뻔뻔하고 때때로 유쾌하다. 독자는 이 단순한 표기만으로도 '익숙한 무협'이 아니라 '낯선 무협'을 느끼게 된다.

작품은 홈즈와 무협을 빌려온 측면이 강하다. 정통 팬에게 외면받을 수 있지만 둘 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제법 유쾌한 이야기다. 특히 제목부터 꽤 눈길을 끄는데, 제목은 천마재림天魔再臨 만마앙복萬魔仰伏이란 말의 변형이다.

천마天魔란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마교魔敎 교주로,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다. 천마를 추앙하는 신자들이 숭배할 때 하는 대사가 "천마재림 만마앙복"이다. 홈즈와 무협을 아는 독자라면 이 제목을 보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ksh@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