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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사라지는 한국 1호 원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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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7월20일 경남 양산군(현 부산 기장군)에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준공식이 열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 정일권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까지 참석해 한국이 원전을 가동하는 세계 21번째 국가가 된 것을 축하했다. 동아시아로 한정하면 일본에 이은 2위였다. 박 대통령이 흥분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이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원자력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과학기술 면에서도 커다란 전환점을 이룩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원전 준공을 계기로 전력난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여긴 국민들이 전기를 펑펑 쓸까봐 걱정한 듯 “넉넉한 부존자원을 갖지 못한 우리가 세계의 부강한 나라들과 어깨를 겨누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평소에 검소하고 절약하는 기풍을 계속 길러 나가야 할 것”이라는 말로 절전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호랑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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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고리 원전 1호기 기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한국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1978년 준공돼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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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1호기 착공 임무를 부여 받은 선발대가 원전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부지에 도착한 것은 1970년 9월 초였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의 눈길은 싸늘했다. 원전 건설의 필요성과 별개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1개월 가까이 주민들을 설득했으나 진척이 없자 선발대는 1970년 10월부터 불도저를 동원해 부지 정지작업에 나섰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주민들이 불도저를 가로막아 작동은 불과 몇 분 사이에 멎고 말았다”며 “불도저가 70m를 전진하는 데 무려 5시간이 걸렸다”는 구절이 나온다. 치열한 대치 끝에 결국 주민들이 양보했다. 한국전력 측이 제시한 보상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주에 동의한 것이다. 마침내 닥친 이삿날 주민들은 동네 앞바다를 굽어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국내 1호 원전 건설의 뒷면에는 이런 안타까운 사연도 숨어 있다.

한국 원자력발전 역사의 원년이라 할 1978년 이후 원전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고리 원전 1호기 준공 후 5년이 지난 1983년 7월 고리 2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가장 최근인 올해 4월부터 상업운전 중인 신한울 2호기까지 반세기 가까운 기간 국내에 지어진 원전은 총 28기나 된다. 물론 우리 원전 산업이 늘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탈(脫)원전을 지향한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말 그대로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문재인정부도 원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거둬들였다. 현 윤석열정부는 ‘원전이 곧 민생’이라는 모토 아래 K-원전 재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원전은 2023년 한 해 동안 총 18만479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했는데, 이는 우리 발전량 전체의 30.68%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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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40년가량 가동한 고리 원전 1호기 모습. 2017년 영구 가동 중단 조치가 내려진 데 이어 최근 해체 수순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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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원전 1호인 고리 1호기가 해체에 돌입했다. 애초 30년간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된 고리 원전 1호기는 2007년 수명이 다했다. 그래도 ‘10년 정도는 더 쓸 만하다’는 판단에 따라 2017년 7월까지 가동이 연장됐다가 결국 영구 중단 수순을 밟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이제 건물과 부속시설 등을 완전히 철거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고리 원전 1호기가 우리나라 최초 원전이다 보니 원전 해체도 당연히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스위스 4개국뿐이었는데, 이번에 한국이 잘하면 5번째 국가로 추가될 전망이다. 국내 원전들을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고리 1호기 해체 경험을 토대로 원전 해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 기술력을 선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이 원전 건설은 물론 해체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우뚝 서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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