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2030 플라자] 20대 해병대원의 죽음에 대한 동세대의 마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2023년 7월 22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된 고 채수근 상병 안장식에서 한 장병이 채상병의 영정을 들고 있다. 채 상병은 집중호우 피해지역인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신현종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사고.” 청와대 관계자는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대통령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함께 보도되었다.

관련 내용이 보도된 후 2030 또래 중 대통령이나 여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여당을 지지하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하지 않던 심한 표현까지 써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경우가 잦았다. 20대 초반의 군인이 잘못된 업무 지시로 목숨을 잃었고, 그랬음에도 업무 지시자인 사단장 등은 권력의 비호 때문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 2030세대가 인식하고 있는 사건의 본질이라 그렇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 사단장 등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넘길 예정이라 하자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말도 나왔다. 일선 부대원의 경계 실패로 철책이 뚫린 사건 등에는 사단장을 처벌하는 것이 과하다는 판단이 적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경우가 달라보인다.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맨몸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선 것은 사단장 지시 사항이라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수색 대원들에게 하의로 전투복, 상의로 적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고 다른 옷은 입어서는 안 된다는 ‘사단장님 강조 사항’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을 점검할 예정이라는 내용까지 하달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전쟁 중이라면 잘못된 판단을 내려 병력 손실이 난 전투가 있었다 하더라도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시 대민 지원 과정에서 잘못된 지시 명령으로 인명 손실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령권자가 응분의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당연하다 여겨지기에, 제반 상황이 보도된 현 상황에서 명령을 직접 한 사단장이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데에 국민들이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고 말이다.

박정훈 대령에 대응한 일도 국민적 반발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1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포함한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결재를 받았다. 그 후 법무관리관 등에게 대기하라는 의견을 받았으나 조사 결과를 그대로 경찰에 넘겼고, 이 때문에 집단 항명 수괴로 형사 입건되었다.

죄명을 보면 해병대 수사단이 집단으로 항명했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항명죄는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음을 처벌하는 것이다. 그리고 판례에서 불법 명령은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 하였다. 사건 책임이 있는 사단장의 죄를 무마하라는 명령은 정당한 명령이라 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미국에서 여러 행정학 교수가 “관료들은 단순히 정치권의 도구로 다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헌법상 의무를 수탁받은 존재”라고 했다. 박정훈 대령에게는 공정하게 수사하고 이를 절차에 따라 처리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업상 의무를 수행한 것이고 그 의무 수행을 막은 지시가 정당하다 보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수 국민이 채 상병 사망 사건 특검을 요구해 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은 특검 통과 절차상 하자나 특별검사 지명을 야당이 하도록 정한 문제를 국민에게 알려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된 실체가 무엇인지, 대통령실의 생각은 무엇인지가 더 의문인 국민이 많을 것이다. 지혜로운 해결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신재민 前 기획재정부 사무관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