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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투데이 窓]글로벌 R&D, 연구데이터 관리·공유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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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올해는 여러모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글로벌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확정한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필두로 국가 차원의 제도개선과 정책지원이 추진된다. 또한 지난 3월에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우리나라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준회원국 가입협상이 타결됐다. 호라이즌 유럽은 유럽연합의 대표적 연구혁신 프로그램으로 국가간 경계를 초월해 과학기술 연구협력을 촉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준회원국 자격인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며 유럽 및 해외 우수 연구자들과 협력 또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호라이즌 유럽 참여는 과학기술 선도국가로 도약을 꿈꾸는 정부는 물론 연구자 모두에게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회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호라이즌 유럽 참여의무 중 하나는 연구데이터 관리와 공유다. 호라이즌 유럽의 전신인 '호라이즌 2020'에서 시범도입된 '연구데이터관리(Research Data Management·RDM)제도'는 체계적 연구데이터 관리계획 수립을 의무화했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연구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했다.

사실 연구데이터 개방은 이미 전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주요국을 중심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R&D 사업에서 발생한 연구데이터를 개방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경우 2023년부터 연구자금을 지원한 과제가 종료될 때 연구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유례없이 신속히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의 사례 역시 주요국과 글로벌 학술논문 출판사들이 합의해 연구결과와 연구데이터를 전면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깃허브(GitHub) 같은 플랫폼을 통해 코딩소스와 빅데이터를 공유하며 협업하는 것이 보편화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몇 년 전부터 체계적인 연구데이터 관리와 활용을 위한 법·제도적 준비를 해왔다. 2020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국가연구데이터플랫폼'(DataON)은 연구데이터에 대한 손쉬운 접근과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지난해 말에는 연구데이터 공유촉진과 개방형 연구생태계 구축을 목적으로 '국가연구데이터 관리 및 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에서는 연구자의 연구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연구기관이 승계해 관리한다는 내용과 함께 '데이터관리계획'(Data Management Plan·DMP) 제출의무를 명시했다.

하지만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아직 연구데이터 관리와 공유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부족하다. 연구결과를 학술논문이나 특허를 통해 공개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연구데이터까지 공개하는 것은 아직 낯선 탓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차원에서도 아직 연구데이터를 통합해 저장하는 리포지터리를 구축하지 않은 곳이 많고 구축한 곳들도 DataON에 연계한 경우는 드문 편이다. 또한 DMP 같은 연구데이터 관련 제도가 도입되긴 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부족하고 일부 대형 R&D 사업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호라이즌 유럽 참여를 계기로 국내 연구자들의 글로벌 R&D 협력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기술패권 시대에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산의 전략적인 공유와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는 연구데이터 관리와 공유에 대한 명확한 법·제도체계를 정비하고 연구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연구데이터 생산의 주체인 연구자와 연구기관들도 연구데이터 관리와 공유에 대한 세계적 추세를 받아들이고 이를 연구현장에서 실천하는 문화조성에 노력해야 한다.

손병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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