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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선거가 더 급해” 성장 이끈 이민자에 문닫는 선진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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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이민문제 핫이슈 떠오르자

바이든, 국경 통제 강화방안 준비

英-加-濠도 이민 억제로 돌아서

‘이민자 주도 경제성장’ 역풍 맞아… “보여주기 정책, 큰흐름 못바꿔” 지적

동아일보

지난해 12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이 집결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순이민자 수는 330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루크빌=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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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이민 붐이 주요 선진국에서 역풍을 맞고 있다. 미국에선 이민이 대선 최대 이슈로 떠오르자 조 바이든 행정부가 국경 통제 강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정부는 비자 받기 어렵게 만드는 이민 억제책을 내놨다. 이민이 주도해 온 경제성장 모델이 흔들린다.

● 美 대선 핫이슈 부상한 이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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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지금 가장 큰 이슈는 경제도, 인플레이션도 아닌 이민이다. 갤럽이 매달 실시하는 ‘미국의 가장 큰 문제’ 여론조사에서 이민은 2∼4월 석 달 연속 1위에 올랐다. 1999년 첫 조사 이래 이민이 이렇게 오래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다.

미국으로의 이민 행렬은 역대급이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지난해 순이민자 수(유입 인구―유출 인구)를 330만 명으로 추정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42만 명)과 비교하면 8배로 폭증했다. 이 중 240만 명은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거나 아직 법원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이민자다.

지난해 텍사스주가 이민자를 대거 뉴욕 시카고로 실어 나른 뒤 넘치는 이민자로 인한 혼란상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공세는 유권자를 파고들었다.

수세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들어 “국경 폐쇄 권한”을 운운하며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미국 정부가 망명 신청 기준을 높이고 새로 도착하는 이민자를 추방하는 조치를 준비 중이란 보도가 이어진다.

● 이민 문 닫는 선진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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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이 최대 정치 현안이 된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이민자 수(51만8000명)를 기록한 호주 정부는 2025년까지 이 수치를 25만 명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기술이민 자격을 대폭 강화하고 유학생 영어 점수 기준을 올리는 정책을 내놨다. 클레어 오닐 호주 내무장관은 지난달 성명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이민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가파른 인구 증가율(지난해 3.2%)을 기록한 캐나다 역시 이민 억제로 돌아섰다. 2026년까지 캐나다에 머무는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수를 지금(250만 명)보다 20% 줄인다는 목표다. 이달부터 캐나다 기업은 영주권 없는 외국인을 채용하기가 어려워진다.

올해 말 총선을 앞둔 영국은 숙련 노동자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임금 수준을 대폭 올려(2만6200파운드→3만8700파운드·약 6600만 원) 이민자 줄이기에 나섰다.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고임금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던 세제 혜택을 크게 줄였고, 뉴질랜드는 최근 저숙련 직업 이민자에게도 영어 기준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배경엔 심각한 주택난이 있다. 주택 부족으로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악화한 여론을 반이민 정책으로 달래려는 것이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주택 공급난은 사실 전 세계 공통 현상. 하지만 이들 국가에선 이를 이민자 탓으로 돌린다. 심지어 이민자에게 복지 혜택을 챙겨주느라 국가 재정이 거덜 날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도 나온다.

● 경제 성장 동력 흔들릴까

이민자 유입은 선진국 경제를 떠받쳐온 원동력이다.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 이들 나라에서 건설, 숙박, 간병 같은 영역을 저임금의 이민자 노동력이 메워 왔다. 그 덕분에 높은 임금 상승률 없이도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밀려드는 유학생 덕분에 대학은 등록금 수익을 두둑하게 올렸다. 저출산으로 고갈 위험에 빠졌던 국가의 연금 시스템도 생명을 연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이례적인 대규모 이민자 유입”이 OECD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역시 3월 보고서에서 최근 미국의 고용 호황과 소비 지출 증가 모두 “이민자 효과”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민 증가세를 꺾는다는 건 곧 경제 성장이 꺾인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미 캐나다 금융회사 데자르댕은 “이민 정책 변화로 캐나다는 올해 실질 GDP가 감소하는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반이민 정책이 실제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헤인 더 하스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저서 ‘이민의 실제 작동 방식’에서 선진국의 반이민 정책이 “본질을 은폐하는 정치적 쇼맨십 행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선거용 보여 주기식 정책이지 실제 이민 증가 흐름을 바꾸진 못한다는 뜻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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