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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취재수첩] 간 보는 농협은행?… '홍콩 ELS 배상' 실적, 왜 극도로 부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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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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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KB국민은행을 비롯해 주요 시중은행들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에 대한 자율배상 결과를 줄줄이 공개하고 나섰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손실 배상금을 받은 고객은 지난달 26일 기준 50명에 달했다.

은행별로 우리은행이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 13명, KB국민은행 8명, 신한은행 6명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물론 배상금을 받은 고객의 10%가 일반 투자자들이 아닌 은행의 임직원이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을 뒤로하고 일단 은행들이 실제 자율 배상에 실제로 나서고 있다는 점, 또 그에 따른 관련 수치가 공개됐다는 점에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아직까지도 자율배상 지급 사례가 공개되지 않아 눈에 띄는 은행이 있다.

바로 NH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은 당시까지 '배상을 완료한 사례가 없다'고 오 의원실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액면 그대로라면, 5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농협은행만 자율배상 건수가 전무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농협은행은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자율배상 진척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요청이 왔을 때에도 "배상비율 산정 시스템 구축 단계"라며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더딘 진척사항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농협은행이 처음 대규모 '홍콩 ELS 손실 사태' 가 발생하면서 금융 당국이 ELS 판매 상품 중단 등 관련 조치를 취할 때는 가장 먼저 액션(?)을 보였다는 점이다. 또 뒤이어 농협은행은 금융 당국이 홍콩 ELS 분쟁조정 기준안을 제시하자 이를 수용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이처럼 홍콩 ELS와 관련한 금융 당국의 시책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 농협은행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피해자들과의 자율배상 협상 실적은 부진한 것이다.

가진 능력이 타 시중은행에 비해 평균 이하인지, 아니면 정부와 금융당국에만 일단 빠르게 반응하고 보는 농협 조직의 습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홍콩 ELS 손실에 대한 자율배상 협상 건수가 타 은행과 비교해 지지부진한 것은 의문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은행권의 자율배상 협상 지지부진한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은행들도 실적 '0'건인 농협은행과 피차일반, 오십보 백보 일 수 있다.

그러나 한 발 더 들어가, 자율배상 협상 실적이 현저하게 부진한 이유가 농협은행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이끌기 위한 일종의 '간보기' 전략 아니냐는 해석이 금융계 일각에서 나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실제로 이런 관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오는 13일 금융감독원이 개최하는 홍콩 ELS 대표사례 분쟁조정위원회다.

금융 당국은 이번 분쟁조정위에서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을 대상으로 은행별 대표 사례를 제시하고, 조정안을 통해 보다 원활한 자율협상안을 내놓기로 했다. 조정은 재판에서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즉 이번 분쟁조정위의 결과에 따라, 당초 지난 2월 금융 당국이 제시했던 홍콩 ELS 손실 배상 가이드라인과 배상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분쟁조정위 결과는 14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농협은행의 홍콩 ELS 규모는 무려 1조8000억원 수준이다. 5대 시중은행 중 3번째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미 NH농협금융지주는 올 1분기 실적에 3416억원의 ELS 관련 충당부채 규모를 반영했다.

분쟁조정위에서 제시될 조정안이 사실상 새로운 배상 기준으로 작용해 배상액이 줄어들게 되면 농협금융은 당초 적립했던 충당 부채를 환입 받을 수 있고 향후 실적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농협은행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시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것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홍콩 ELS 피해자들이 전액 배상을 요구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100% 만족할 수 없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방안을 찾는 것은 농협은행이 가장 우선해야 할 사회적 책무다.

이런 와중에 배상금 규모를 저울질하기 위한 '간보기 전략'이라는 의혹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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