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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현장의 시각] ‘풋옵션 30배’를 요구한 민희진 대표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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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18일째 하이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 얘기다. 지난 십수 년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며 K팝 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 민 대표는 지금은 대중 앞에 나와 여느 아티스트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이브와 민 대표 간 공방의 내용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쟁점도, 대중의 관심 사항과 여론도 불과 18일 동안 끊임없이 변해 왔다. 하이브의 주장대로 민 대표가 정말 배임을 저질렀는지, 어도어를 형해화(形骸化)하려 했는지, 뉴진스를 하이브의 울타리 밖으로 빼돌리려 했는지는 당사자들만 안다. 그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복잡다단한 전개 안에서 이목을 끈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양자 간 갈등의 불씨로 지목된(하지만 민 대표는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보상 규모’다.

하이브는 지난해 초 이사회 의결을 통해 민 대표에게 어도어 지분 18%를 11억원에 매각했다. 원래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부여했지만 고액의 세금을 내야 하는 민 대표의 상황을 고려해 스톡옵션을 취소하고 주식을 저가에 양도했다고 한다. 민 대표는 11억원에 산 지분 18% 중 13%를 하이브에 되팔 권리, 즉 풋백옵션도 함께 받았다. 풋백옵션 행사 가격은 최근 2개년 영업이익 평균치의 13배로 정해졌다. 영업이익에 13을 곱한 값을 기업가치(시가총액)로 정한 뒤, 지분율만큼 매수해 줘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풋백옵션을 행사한다면 1000억원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 대표는 풋백옵션 행사 가격을 영업이익의 13배가 아닌 30배(정확히는 30배에 가까운 20몇배)로 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민 대표 측은 ‘30배 요구’가 단지 제안 중 하나일 뿐이었으며 협상 우선순위에 있는 항목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즉 문제의 본질도, 중요한 문제도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풋백옵션 배수 등 보상 규모를 빼놓고 이번 사태를 논할 수 있을까.

영업이익 30배의 풋백옵션 행사가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 수준이다. 지난달 그의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봤다는 지인은 ‘민 대표가 월급쟁이의 마음을 대변해 줘서 통쾌하다’고 했지만, 보상액을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올려달라는 그는 이미 월급쟁이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섰다.

민 대표는 풋백옵션 행사 가격 30배에 대해 “차후 등장할 보이그룹 제작 가치가 반영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돌 그룹 한 팀당 풋백옵션 배수가 2배 이상 뛴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런 논리라면 세 번째 그룹이 데뷔할 때 풋백옵션 행사가액이 한 번 더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인가.

업계에서는 하이브가 기존에 보장해 줬던 13배도 충분히 높다고 말한다. 통상 비상장사의 풋백옵션 행사 가격은 이익의 6~7배로 책정된다. 상장 시 공모주 발행으로 인해 주당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에, 배수를 처음부터 지나치게 올려 잡을 수 없어서다. 예를 들어 향후 어도어가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전체 주식 수의 30%에 해당하는 공모주를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민 대표 지분율 18%는 약 12%로 낮아진다. 지분율 18%를 기준으로 13배에 ‘그쳤던’ 풋백옵션 배수는 더 올라가게 된다. 민 대표가 K팝 산업에 세운 공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혁혁한 것이기에, ‘성덕(성공한 덕후)’을 자처한 하이브가 그의 역량을 높이 산 것이다.

보상을 충분히 받을 테니 다른 부당함은 참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하면서 느낀 부당함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민 대표가 ‘사태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뉴진스 홀대’ 또한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을까 한다. 다만 중요한 건, 민 대표가 문제 삼는 부당한 계약 조항들도 ‘노예계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어도어 주식을 한 주라도 보유하고 있으면 일정 기간 경쟁사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경업금지 조항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는 업계에서 보편적인 조항이다. 민 대표 같은 핵심 임원이 회사의 무형자산을 들고 경쟁사에 갈 수 없도록 제한하는 장치다. 그는 또 풋백옵션이 걸려있지 않은 잔여 지분(5%)을 하이브의 동의 없이 외부에 매각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는데, “요구하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나머지 5%도 되사주겠다”는 입장을 밝힌 하이브와 협의했다면 원만하게 풀 수 있지 않았을까.

민 대표는 자기 표현대로 ‘가만히 있어도 1000억원을 벌 수 있는’ 사람이었다. 13배의 풋백옵션을 행사했다면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을 것이다. 수많은 ‘월급쟁이’들의 롤모델도 됐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건은 더 씁쓸하다.

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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