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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외국 의사 도입' 공방…"검증 안돼 환자 피해" vs "가장 실질적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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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앞장서서 의료의 질 후퇴" 의료계 반발

환자단체 "외국 의사 투입해서라도 사태 막아야"

뉴스1

의대 증원 문제가 3개월이 넘어가며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동시키고 있다. 2024.5.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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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정부가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한 방안으로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에게 의료 행위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내놓으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국내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하지 않아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외국 의사를 들여오는 건 국민 건강을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환자단체는 석달째 의료 현장을 떠나 있는 전공의들의 자리를 메우는 좋은 대안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8일)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에 이르렀을 경우 외국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도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령안에 따르면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된 경우 외국 의료인 면허 소지자도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의료 지원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현재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 단계는 '심각'으로 개정령안이 통과되는 즉시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를 국내 병원에 투입할 수 있게 되는데,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부터 제도를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는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가 수련병원에서 전문의 지도 감독하에 진료 업무를 지원하도록 하면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복지부는 예상하고 있는 지원 규모에 대해선 "외국 의사 활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또 국내에 있는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의 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집계가 안 된다"고 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정책으로 검증이 되지 않은 해외 인력 유입은 의료의 질을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학병원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9일 뉴스1과 통화에서 "들어오는 외국의사의 대부분은 중국인 의사가 될 것"이라며 "물론 전문의가 아닌 초짜 의사들이 임상실습 삼아 돈까지 받고, 의료사고가 나면 면책이라 튀어버리면 그만이다. '중국인 의사는 한국으로, 한국인 의사는 미국으로'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질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외국 의사를 들여오는 건 결국 국민 건강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성혜영 의협 대변인은 "한국인이면서 헝가리나 우크라이나 등에 많이 가서 의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졸업자 중 한국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신 분들에게는 국내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개방이 되어 있다"며 "하지만 그 안전장치를 풀어버렸을 때 그 피해는 환자가 입게 된다"고 했다.

성 대변인의 말처럼 해외 의대 졸업자가 국내 의사면허를 취득하려면 복지부가 인정하는 외국 의대를 졸업하고 현지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국내 의사 예비시험과 국가시험을 순차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엔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가 국내 의사 시험을 통과하지 않아도 복지부 장관의 승인 하에 지정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성 대변인은 "정부가 합의하지 않고 한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전공의들이 항거의 의미로 사직을 한 것인데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인을 두고 외국 의사를 도입한다는 건 누구를 위한 일이냐"며 "정부는 불법을 합법화 시키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 이는 국민 건강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위험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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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와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2024.5.9/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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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건의료노동조합은 길어지는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집단 진료 거부가 워낙 오래되고 실질적으로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도 없는 상태에서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 같다"면서 "외국 의사면허라고 해서 우리나라 의사면허와 다를 게 없고, 일정한 조건과 자격을 갖춘 면허를 가지고 있는 데다 전문의들의 지도하에 의료행위를 하게끔 한다면 국내에 와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돌어오면 외국 의사를 수입할 이유가 없다.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어쨌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그러니까 전공의들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환자단체는 오히려 외국 의사 도입이 지금의 의료 공백을 메울 좋은 대안이라며 정부 정책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여태까지 정부가 내놨던 여러가지 대책 중에 가장 실질적인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지금 의료 공백이 엄청 심각한 상황인데 석달이 지나도록 해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너무 심각하다. 양잿물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외국 의사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외국 의사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이 의사들이 외래를 보면서 진료를 보거나 상담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니겠는가. 전공의 자리를 대신하겠다는 건데 수술실에서 보조를 하는 그런 정도에서 그치지 않겠느냐"며 "외국 의사를 투입해서라도 이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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