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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별일까 동네북일까…‘씁쓸해진’ 기업 임원 [경영전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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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임원 주 6일 자율근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주 6일 근무에 들어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삼성전자에서는 부랴부랴 또 다른 공지를 냈다. 직원 등 실무자는 절대 주 6일 근무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오로지 임원만 해당되고, 그것도 자율적으로 출근한다는 설명이다.

그러자 일부 기업 임원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안 그래도 기업의 별이라던 임원의 위상이 낮아지는 판에, 회사가 어려울수록 임원만 닦달한다는 푸념이다. 한 대기업 전무는 “경영을 책임지는 일원으로서 열심히 일하자는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임원 보상과 혜택은 계속 줄어들고, 자유분방한 MZ세대 직원들은 무작정 내버려둔 채 임원만 압박하는 게 과연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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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최근 주 6일 근무에 들어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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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지 않은 임원 위상

급여·복지 줄고 임시직 해고 압박

기업 임원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다. 기업 분석 전문 한국CXO연구소의 ‘2023년 100대 기업 직원의 임원 승진 가능성 분석’ 결과, 국내 100대 기업 일반 직원들이 임원 명함을 새길 확률은 0.83% 수준으로 나타났다. 직원 120명가량이 치열하게 경쟁해 종국에는 1명이 임원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임원 승진의 관문은 시간이 갈수록 좁아졌다. 지난 2011년 임원 1명당 직원 수는 105.2명이었고 2021년 131.7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119.8명을 기록하며 소폭 떨어졌다. 국내 100대 기업에서 임원 승진 확률이 1%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렵사리 임원이 되면 신분이 달라진다. 대기업의 경우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거나 승용차를 제공받고 출장 갈 때 비즈니스석을 타는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처럼 기업 임원은 2000만 직장인의 꿈으로 각광받지만 ‘임시 직원’이라는 불안정한 지위로 한순간에 ‘동네북’ 취급당하기도 한다. 최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의 주 6일 근무가 한 사례다.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반도체 사업 부문에서 15조원 적자라는 성적을 기록했을 때도 하지 않았던 근무 체제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사업 부문에서 1조9100억원이라는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음에도 임원이 주 6일 근무를 시행하는 것은 그만큼 경영 불확실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임원 급여 역시 대폭 줄이는 추세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열어 지난해 480억원이던 이사 보수 총액 한도를 올해 430억원으로 감액했다. 장기 성과 보수 한도는 1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줄였다.

임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 또한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하다. 삼성그룹은 퇴직 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한 상근 고문 제도의 혜택을 축소했다. 삼성은 그동안 회사 기여도에 따라 상근 고문, 비상근 고문, 상담역, 자문역 등으로 나눠 퇴직 임원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해왔다. 사장급·부사장급 중 기여도가 큰 고위 임원에게는 재임 시절 급여의 70% 수준을 지급하고 개인 사무실과 비서, 차량, 회의비(요식성 경비) 등을 주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퇴임 후 1~3년간 주어졌던 상근 고문직 임기를 줄이는 한편 혜택 규모 역시 축소하고 있다.

삼성뿐 아니다. SK그룹도 올해 그룹 주요 경영진이 참석하는 토요일 회의를 24년 만에 부활시켰다. 그룹 최고 의사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임원들은 한 달에 두 차례 금요일에 쉴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반납했다. LG그룹은 이사 보수 한도를 줄였고, 롯데와 이마트 등은 임직원에게 회삿돈을 사용한 골프 자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임원에게 출근을 압박하거나, 급여 반납을 쉽게 유도할 수 있는 이유는 임원은 일반적으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원은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아니며, 휴일과 휴식 시간 관련 규정도 없다. 임원은 계약제 직원이라 회사 눈치를 봐야 하고 급여나 복지를 줄여도 별다르게 반발하기 어렵다.

우재원 노무법인 현명 대표 노무사는 “대기업 임원은 원칙적으로 사업 경영이나 업무 집행에 관한 위탁 관계를 맺고, 실질적으로 업무대표권 또는 업무집행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고 봐 근로자성이 부인된다”며 “결국 대기업 임원은 근로기준법의 모든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나아가 임금체불 진정, 부당해고 구제신청, 산업재해 보상 등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모든 노동관계 법령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임원의 근로자성이 부인되기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관리자급 직원이 마음에 안 들면 임원으로 승진시킨 뒤 얼마 안 가 해고하는 꼼수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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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지난 2월 20일 서울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준감위 3기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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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위상 왜 떨어졌나

성과 내기 힘들어져…MZ 직원 눈치

임원의 근로자성이 부인되는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재계에서 왜 “임원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올까.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기일수록 임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원은 성과로 말하고 그 대가로 혜택을 누리는데, 급변하는 시장 흐름에 따른 잦은 조직 개편으로 임원 입지가 줄어들었다는 진단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원이 목소리를 내려면 실적이 전제돼야 하는데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실적이 과거만 못하니 임원들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근거가 사라졌다”고 분석한다.

또한 “상시적인 위기 국면에 대한 책임을 임원들에게 지우기 쉬운 구조”를 꼽는 이들도 적잖다. 한국 대기업 대부분이 ‘오너 경영’ 체제기 때문에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오너가 아닌 임원이 책임지게 된다는 진단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너 경영 체제에서는 오너들이 대외적인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책임지는 것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대리인으로 세워 책임지는 구조기 때문에 임원 지위는 더욱 불안정해진다”고 들려준다.

기업이 과거보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바뀌면서 조직 내 임원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기업을 오래 다니지 않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조직 충성도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직 구성원들이 MZ화, 개인주의화되면서 수직적 지시에 대해 과정을 물어보고 결과에 복종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며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세상이 바뀌며 구성원의 조직 충성도가 낮아진 것이 임원 위상이 예전보다 떨어진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MZ세대 직원 목소리가 커진 것도 한몫한다는 진단이다. MZ세대가 미디어나 SNS, 플랫폼을 통해 익명으로 회사 내부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상황에서 임원들이 책임질 상황이 더 많이 초래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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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성과 이끌어내려면

근면성보다 장기 성과로 평가

삼성전자가 임원에게 주 6일을 사실상 ‘강요’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삼성전자 조직 전반에 업무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직원과 ‘동반 출근’을 금지했다고는 하나, 임원들이 주말 출근의 성과를 내려면 실무 담당 직원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서다. 비상 국면에서 전반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제를 적용받지 않는 임원들은 기존에도 업무가 있으면 주말에 일해왔는데, 이를 공식화한 셈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준감위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전 세계를 주도하는 사업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삼성도 위기에 처했다고 본다”며 “사장들이 주말에 출근하는 것을 보면 국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근면성’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가 장·단기 성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3~4년간 원격·유연 근무 등을 확대해온 기업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임원 출근은 ‘군기 잡기’의 일환일 뿐, 장기적으로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 반발만 살 것이라는 우려다.

한 대기업 상무는 “실적이 좋지 않을 때 기업이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방안이 임원 급여·혜택을 반납시키거나 회의를 포함한 업무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계약직이라는 점에서 임원을 압박하기는 좋지만 근본적으로 위기 해결 방안이 되는 것인지, 장기적으로 조직 분위기에 긍정적인 것인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임원 압박이 기업 임원 보상이 줄어드는 분위기 속에서 젊은 직원의 애사심을 약하게 만들고, 조직 전체가 경직되는 분위기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른바 리더 기피 현상이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은 “지금은 근면 성실의 시대가 아니라 창의적인 시대기 때문에 일률적인 주 6일 근무는 젊은 우수 인재들에게 부정적인 관료제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상은 적은데 굳이 승진하고 직책을 맡아 골치 아픈 책임감으로 고생하기보다는 속 편하게 내 할 일만 하며 지내자며 리더십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MZ 눈치 보기 차원에서 임원을 중시하자는 게 아니라, 기업 리더십을 이어나간다는 차원에서 무작정 임원의 근면성을 강조하는 문화는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적어도 부장급 등 중간관리자에게는 주말 근무가 의무처럼 다가올 것”이라며 “주 52시간이 넘지 않으며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눈치싸움’만 더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직원은 “임원이 주말에 출근해 일하다 보면 실무 직원에게 연락을 하든 안 하든 업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영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첨단 기술 산업계 글로벌 인재들은 근무 시간이나 출근 여부가 아니라 성과 중심으로 평가·보상받는 데 익숙하다. 삼성 임원 주 6일제 지침이 기존의 상사·위계 중심 기업 문화를 강화한다면 최고급 인재들에게 삼성이 매력적인 직장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삼성이 ‘근면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히려 비전을 제시하는 게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한 국내 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고지가 분명해야 열심히 할 의욕도 생기는 법”이라며 “삼성전자는 뚜렷한 목표나 비전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지 않고 근면성만을 강조하는 듯 보여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근면성’보다 ‘보상’을 강조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 대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임원 보상은 미국에 비해 기본급 비중이 훨씬 높다. 성과급은 대부분 단기 재무 성과에 기반한 현금 성과급이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의 경우 임원 보상에 주식 보상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도 전사 대상 비정기적 특별 성과급 지급 시 약간의 주식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신재용 교수는 “근시안적인 단기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장기 성과에 기반을 두고 회사 성장을 구성원과 공유하는 주식 기반 장기 성과급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업 포트폴리오와 비즈니스 모델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기업이라면 더더욱 경영자의 전략적 판단과 실행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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