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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94] 중국 문명의 오랜 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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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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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을 잘 부리는 일은 예부터 중요했다. 먼 거리를 빨리 이동하려는 사람에게는 더 그랬다. 더구나 생사를 가르는 전쟁의 엄혹함 속에서는 무기(武器)라 할 수 있는 말을 제 뜻대로 부려야 적을 꺾고 살아남았을 테다.

이와 관련이 있는 두 글자가 있다. 하나는 어(御), 다른 하나는 어(馭)다. 앞 글자는 말 부리는 일을 훌쩍 넘어 임금이 직접 사용하는 그 무엇이라는 뜻까지 얻는다. 어용(御用), 어도(御道), 어가(御駕) 등이다. 초기 글자꼴을 보면 이는 말을 직접 부리는 행위가 아니라 말 등이 끄는 수레를 모는 동작이다. 글자꼴에는 길, 사람, 고삐로 보이는 끈 등의 요소가 등장한다.

그에 비해 뒤의 글자는 사람이 직접 말을 제어하는 행위에 가깝다. 우리 쓰임은 많지 않은 글자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의 어국(馭國), 수레를 몬다는 의미의 어거(馭車), 임금의 수레를 가리키는 용어(龍馭) 같은 단어가 있다. 직접적으로 말을 다루는 동작이고, 그 본래 새김은 ‘통제(統制)’에 가깝다. 중국의 정치철학사에 이 글자는 ‘어민(馭民)’이라는 단어로 일찌감치 등장한다. 사람을 말처럼 부린다는 뜻이다. 법가(法家)의 한 축인 상앙(商鞅)이 제창했다고 알려졌다. 여러 설이 있지만 ‘어민’ 방법은 대개 이렇다.

첫째 일민(壹民), 생각을 하나로 묶는다. 둘째 약민(弱民), 약하게 만든다. 셋째 피민(疲民), 피곤에 젖어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한다. 넷째 욕민(辱民), 무서움에 눌려 서로를 의심케 한다. 다섯째 빈민(貧民), 가난으로 몰아 뜻을 꺾게 만든다.

2400년 전의 정치적 견해라지만 참 고약하다. 그러나 현대 중국도 강력한 전제주의가 국민을 찍어 누른다. 그래서 현대 중국인 또한 권력자의 ‘어용’과 ‘어민’에 익숙하다. 문명의 ‘답보(踏步)’에 관한 한 중국은 단연 세계 으뜸이다.

조선일보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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