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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설득은 멀고 선동은 가까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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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빨리 전파

거짓 정보도 자주 들으면 진짜라고 확신해

정부 여당의 정책 설득은 땅 위에서 노는데

여권을 공격하는 선동은 날개 달고 날아다녀

설득도 선동도 ‘소통’이 핵심… 나서서 말해야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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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MIT가 10년간 트위터에서 3백만명 이상이 공유한 뉴스 12만6000건을 대상으로 연구해 2018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가짜 뉴스와 헛소문이 진짜 뉴스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그리고 멀리 퍼져 나갔다. 연구팀이 제시한 설명은 비교적 간단하다. 가짜 뉴스의 기이하거나 혐오스러운 속성이 사람들의 주의를 더 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현상을 ‘신기함 가설(novelty hypothesis)’이라고 불렀다.

진짜 뉴스가 헛소문보다 더 빨리 전파되거나, 적어도 비슷한 속도로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갈 때, 검증되어 매체에 실린 뉴스는 이백 리도 못 간다는 계산이니까. 진짜 뉴스를 6배 많이 생산해야 가짜 뉴스 하나를 따라잡을까 말까 하다는 이야기다.

전파의 속도뿐 아니라 효과도 문제다. 정보에는 ‘초두 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처음으로 접한 정보를 진짜로 믿는 경향이 있고, ‘빈발 효과’도 있어 자주 접하면 진짜처럼 여기게 된다. 아무리 거짓 정보라도 처음 접하고 자주 들으면 진짜라고 확신하게 된다. 초기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메시지의 효과를 설명하며 ‘피하주사 모델’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주사약처럼 몸속에 들어가면 즉각적이고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요즘 미디어 환경에서 인간은 주사를 맞을 필요도 없이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듯 노출되어 산다. 정보는 바이러스처럼 늘 우리 주변을 맴돈다. 개중에는 쓸모 있는 정보도 있지만, 어떤 정보는 치명적 질병을 전염시키기도 하고,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수두 바이러스처럼 몸속에 들어와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면 발병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백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헌 저지선이 위태로울 정도로 지난 총선에서 여권이 대참패한 원인에 대한 설명은 이미 차고 넘친다. 말이 개헌이지, 국가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꿀지도 모를 선거 결과였다. 사태가 그 지경까지 이르게 한 윤석열 정부나 여당의 총체적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를 조심스럽게 보태자면, 정보전의 실패를 들고 싶다. 정부의 설득은 땅 위에서 놀고, 정부를 공격하는 선동은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다. 정책 소통은 부족했고, 위기관리는 늘 때를 놓쳤다. 그 틈으로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각종 선전 선동이 파고들어 자리했다.

법정 고발까지 번진 의료 개혁 사태는, 정부 관료들이 설명하고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했지만, 일반 국민은 왜 2000명이어야 하는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의 의료 수요를 생각한 정책이라는데 왜 의사들이 저렇게 죽을 둥 살 둥 반항하는지, 왜 그들을 설득하는 논리를 정부가 내놓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그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면 정부는 더 소통하고 더 설득하고 무지막지할 정도의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정보는 반대쪽 논리를 하나하나 깰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국민 마음을 살 수 있는 내용이면 더욱 좋다.

요즘 야당이 한껏 고무된 특검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각종 사안, 즉 채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특검이나 기타 여러 특검 사안은, 정책도 아닌 정치 선동에 적합한 소재다. 정부는 이들의 공세에 거의 무방비해 보인다. 소리를 높여 아니라고 말하거나, 반대 증거를 제시하거나, 앞서서 수사를 받겠다고 선수를 치거나, 여하튼 뭔가 적극적으로 응대했어야 할 사안에 미지근하게 대응하는 건, 바로 선전 선동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역정보(counter information)가 없는 상태에서 원래 정보가 먹히는 건 자연법칙이다. 정책은 설득해야 하고, 선동은 적시에 강렬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은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설득은 어렵지만 선동은 쉽다. 왜냐하면 설득은 ‘생각하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선동은 ‘생각 없는 다수’를 겨냥하기 때문이다. 설득은 느리지만 선동은 빠르다. 설득은 재료와 증거가 필요하지만 선동에는 약간 상상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진짜 뉴스는 취재와 보도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거짓 정보는 그냥 공장에서 양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양적인 면에서, 속도라는 측면에서, 또 효과라는 차원에서 설득이 선전 선동을 이기는 건 결코 녹록한 싸움이 아니다.

설득과 선동은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어떤 형식으로든 ‘소통’하는 모양새를 띤다는 점이다. 그러니 소통해야 한다. 사안이 터지면 즉각 반응해야 하고,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하고, 나서서 해명하거나, 하다못해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처럼 억울하다고 몸부림을 치든가 해야 한다. 대통령은 인물이 아니라 기관이다. 대통령이 하는 말은 그 자체로 뉴스 가치가 있다. 그러니 적극 대응하고 해명하면 적어도 뉴스 가치가 있으니 보도하고 주목할 것이다. 세상에는 헛소문이 나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니 나서서 말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도어스테핑부터 기자회견까지 잠재적 소통 기회를 계속 피해 왔다. 그게 가짜 뉴스와 선전 선동에 길을 내어주는 일인 줄도 모르면서. 그러더니 드디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헤드라인 뉴스 속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믿을만한 팬덤이 있어 소통 시스템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도대체 무슨 수로 국민과 소통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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