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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30년… 만델라 후임 3代가 경제 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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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29일 총선, 집권당 위기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남부 쿠누는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의 고향이다. 이곳엔 지난해 여름,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주도해 만델라의 두 번째 동상이 세워졌다. 만델라 사망 10주기를 맞아 동상을 세웠다면서 라마포사는 “만델라의 유산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했다. 이날 X(옛 트위터)엔 그러나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쿠누엔 수돗물도 안 나와요. 사람들은 동물과 함께 더러운 물웅덩이의 물을 먹고 있습니다” “쿠누엔 도로도, 물도, 전기도 없는데 만델라 동상 두 개가 필요한가요?”….

30년 전인 1994년 5월 10일, 세계의 시선은 남아공에 집중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도 투표권을 얻은 총선에서 압승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넬슨 만델라 의장이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다. 17세기부터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토착 원주민들을 굴복시키면서 악습으로 자리잡아 오랫동안 이어진 흑인 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만델라의 취임으로 막을 내렸다. 인종 화합에 따른 정치·사회 안정이 식민 시절부터 갖춰진 경제·산업 기반시설과 시너지를 내서 남아공이 아프리카의 첫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잇따랐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만델라의 후계자들이 부정부패와 실정을 반복해 국가가 빈국(貧國)으로 추락하면서 ‘만델라의 꿈’은 우울하게 퇴색했다는 평가가 많다. 만델라 이후 줄곧 집권해 온 ANC는 정권 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29일 남아공 총선을 앞둔 가운데 ANC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졌다. 이 지지율대로 ANC가 총선에서 과반을 득표하지 못하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행정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 땅은 지금 30년 전보다 훨씬 나은 곳이 됐다”고 했다. 그는 나흘 뒤 노동절 행사에서는 축하 연설을 한 뒤 참가자들과 흥겹게 ‘막춤’을 췄다. 하지만 같은 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우울한 소식을 전해 왔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당초 1%에서 0.9%로 낮춘 것이다. IMF는 또 2025년과 2029년의 예상 성장률도 각각 1.2%와 1.4%로 예측했다. 이 전망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IMF는 올해 남아공 실업률을 33.5%로 예측했고, 내년에는 더 오른 33.9%로 전망했다. 청년(15~34세) 실업률은 40%가 넘는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남아공의 국가 부채는 1300억달러(약 177조원)에 달한다. 국영 전력 공사인 에스콤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사실상 파산 상태가 되어 툭하면 정전이 일어나고, 단수(斷水)도 일상처럼 발생한다. 만델라가 어린 시절에 다닌 쿠누의 초등학교에서 전기가 끊기고 급식비 지원이 중단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단일 아프리카 국가로는 유일한 G20(20국) 회원국인 남아공은 석탄, 금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빠른 경제성장을 일궜다. 2010년에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아프리카 최초로 개최하고, 러시아·중국·인도·브라질로 구성된 신흥 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합류하며 높아진 위상을 과시했다. 그러나 정권의 무능과 부패가 반복되면서 경제는 힘을 잃고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만델라를 이은 후임자들은 잇단 비위와 실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으며 만델라의 명성에 먹칠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만델라가 후계자로 지목한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은 무기 거래 관련 비리 혐의로 조기 퇴진했다. 그 뒤를 이은 제이컵 주마 대통령 역시 해외 재벌과의 유착 논란, 부패 혐의 등으로 조기 사퇴했고, 재임 기간 성폭력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던 현 라마포사 또한 2022년 뇌물로 받은 400만달러(약 54억원)를 창고에 숨겼다 들통나 한 차례 탄핵 위기를 겪었다.

극심한 빈부 격차는 30년간 개선되지 못한 남아공의 ‘고질병’으로 꼽힌다. 만델라가 집권하면서부터 기존 백인 기득권 세력이 가진 부(토지와 광산 등의 소유권)를 흑인들에게 분배하는 흑인 경제 육성 정책(BEE)을 추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돼 소수 흑인 세력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으며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독이 됐다. 앞서 세계은행은 2022년 남부 아프리카 나라들의 빈곤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빈곤 실태 조사 대상 지구촌 164국 중 남아공이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고 밝혔다. 전체 부(富)의 71%를 6100만 인구의 10%가 독점한 반면, 하위 60%가 가진 부는 고작 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노조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임금은 올랐지만 기업 생산성은 낮아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흑인에 의한 통치를 가능하게 한 자유민주주의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감 또한 남아공엔 팽배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했다. 지난해 말 남아공 인문과학연구소 설문 결과 남아공의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불만이다’라는 답이 약 57%로 만족한다(28%)는 답을 크게 앞섰다. 20년 전만 해도 만족(45%)이 불만족(38%)보다 높았던 것과 대조된다. ‘무능한 민주주의 정부’에 질린 탓일까. 응답자 다섯 중 한 명은 “때로는 비(非)민주적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답했고 30% 넘는 사람이 “어떤 형태의 정부인지 관심 없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약 10년 전 70%에 육박했으나 42%로 내려앉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아프리칸스어(남아공 공용어 중 하나)로 ‘분리’라는 뜻. 17~19세기 남아프리카에 들어온 네덜란드·영국계 백인들이 피정복민 신세가 된 흑인 원주민을 탄압하며 관행이 됐고, 1948년 공식 법제화됐다. 이 제도 아래 흑인은 백인 거주지에서 살 수 없었고, 병원 등 공공장소 이용이나 고등 교육 등 기본 권익도 제한받았다. 인종 간 결혼도 금지됐다. 이로 인해 남아공은 유엔 회원국 자격이 정지되고 올림픽 출전도 금지됐다. 1990년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대통령이 철폐 방침을 천명하고, 4년의 권력 이양 과정을 거쳐 1994년 만델라 정권이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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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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