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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애착 넘어 혐오로 나아가는 정치팬덤 [이철희의 돌아보고 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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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다. 이뿐인가. 승패가 갈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온갖 멍에를 씌우고, 심지어 죽이려고 달려든다. 절제와 관용은 사치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의 승리를 위해 방해되는 모든 행위는 이적행위,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타도의 빌런으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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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선언 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왼쪽)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5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경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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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은 팬(fan)과 덤(dom)을 합친 말이다. 덤이 세력, 영지, 범위 등을 말하니 팬덤은 팬의 무리를 뜻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팬심이라고 하고, 좋아하는 행위를 팬질이라고 하듯이 팬이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산업사회, 대중문화의 산물이다. 전자 미디어의 영향도 컸다. 라디오, 영화, 티브이(TV)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팬현상은 일상화가 됐다. 우리는 누구를 좋아하며, 그 좋아함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팬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단어도 있다. 옥스퍼드사전이 2023년 올해의 단어로 ‘rizz’를 선택했는데, 거대팬덤을 거느린 한 인터넷 방송인이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그의 팔로어는 개인방송 650만 명, 유튜브 400만 명, 인스타그램 500만 명이다. 참고로 rizz는 이성을 끌어당기는 숨겨진 매력이란 뜻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팬덤이 문제라는 걸까? 팬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적 힘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워낙 팬현상이 일반화되다 보니 시장에서도 이제는 이를 의식하고 있다. 오죽하면 팬경영(fanagement)이란 말까지 생겼으랴. 아이돌 그룹의 경우에도 팬덤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비티에스(BTS)의 아미(ARMY), 스위프트의 스위프티(swiftie)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된다. 아미는 시위에, 스위프티는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팬덤의 시대다.



“지금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작금의 팬덤을 이해해야 한다.” 트럼프 현상을 팬덤 개념으로 파악한 복스(VOX) 기사의 제목이다. 기사를 작성한 로마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트럼프 팬덤’으로 불렀다. 최근 셀럽, 즉 유명인에 대한 팬덤을 말할 때 덕질(stan)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는데, 스토커(stalker)와 팬의 합성어다. 가수 에미넴의 동명 노래 제목에서 유래했다니 이 또한 팬덤의 힘을 말해주는 실례다. 이런 덕질을 추동하기 위해 트럼프는 전략적으로 자신을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하는 셀럽으로 유형화했다. “정치적 변화를 원한다면 단지 트럼프에 표를 주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감정투사의 대상을 정치 일반에서 트럼프 개인으로 옮겨야 한다. 그를 덕질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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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1년 1월6일 의사당으로 몰려가기 전 그의 연설을 들으려고 백악관 앞에 모여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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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팬덤이 정치에 미치는 강력한 힘 때문에 등장한 개념이 정치팬덤, 팬덤정치다. 팬덤정당, 팬덤민주주의, 팬덤민족주의라는 말도 쓰인다. 윌리엄스와 베넷에 따르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정서적 반응과 동일시를 토대로 한 네트워크화된 팬의 행동주의 권력”이 정치팬덤이다. 이 정치팬덤이 차이와 이견을 혐오하고 배제하면서 정당과 의회 등 정치를 짓누르는 현상, 또는 정치인이 팬덤을 만들고 이를 권력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양식이 팬덤정치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에 대해 주로 투표를 통해 ‘지지’를 표명한다. 이게 보통의 대중정치, 민주정치다. 그런데 팬덤정치는 단순히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넘어선다. 총공(문자총공격)이라고 불리는 문자 공세, 시위 등 퍼포먼스, 댓글 달기 등을 통해 일상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심지어 선호 정치인에 대한 순위까지 매겨 발표한다. 이런 개입 행위들을 통해 정치인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강제한다. 어지간한 정치인은 이들의 표적질에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게 된다. 지지-보터(voter)에서 개입-팬덤으로 정치참여의 방식과 주체가 바뀌었다. 가히 팬덤의 권력화라 부를 만하다.



정치팬덤은 스포츠팬덤에 비유된다. “스포츠는 경쟁이 주가 되고, 특히 확연하게 일대일로 적대적인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에 상대 팀에 대한 경외와 동시에 상대 팀이 자신의 팀을 이겨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안티팬 활동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 팀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대하고 대항하려는 것이 팬 정체성의 구성 조건이 되며, 상대방을 재미로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행위를 통해 팬 정체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테오도로폴루) 요컨대, 스포츠에서는 팬덤이 안티 팬덤으로 나타나는데, 정치에서도 그렇다는 얘기다.



정치팬덤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당당하게 누군가에 대한 혐오와 배제에 나선다. 다르게 행동하거나 딴소리를 내면 욕설을 퍼붓고 혐오를 쏟아내고 심지어 배제에 나서기도 한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타도의 대상, 즉 적으로 규정된다. 같은 당에 속해 있으면 이런 편가름이 순화될 것 같지만 정반대다. 다른 당에 있는 적보다 더 미워하고 증오한다. 게다가 ‘내 편’인지 아닌지는 팬덤이 결정한다. 이쯤 되면 권력화가 아니라 폭력화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팬덤정치는 사랑의 표출이 아니라 미움의 배설이다.



정치에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 후보직, 의원직, 대통령직 등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다. 승자독식의 제도 탓이다. 뿐인가. 승패가 갈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온갖 멍에를 씌우고, 심지어 죽이려고 달려든다. 검찰 등 국가기관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정의구현이나 적폐청산 등 명분을 뭐로 내세우든 정치보복이고 패자 절멸로 비친다. 정치나 선거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죽고 사는 전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절제와 관용은 사치다. 이처럼 전시상태이니 군법 적용하듯 이견은 명령불복종을 넘어 ‘전쟁 중에 아군에게 총을 거꾸로 겨누는’ 내부총질로 간주된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의 승리를 위해 방해되는 모든 행위는 이적행위,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타도의 빌런(악당)으로 규정된다. 본말이 전도되듯, 좋아함에서 시작됐지만 사랑은 말이 되고 혐오가 본이 된다. 안티 팬덤이 팬덤정치의 숨은 본성인 셈이다.



정치팬덤이 등장한 역사적 맥락을 추적해 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 따른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의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데 소홀하고, 정치인들은 무능한데다 부패하니 당연히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늘 거셀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길은 사실상 투표 외에 없었다. 정 아니다 싶을 때는 거리로 나가서 시위를 벌이는 직접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당이 대선 후보를 뽑는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도록 문을 열었다. 김대중 정부가 위기에 빠지고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역력하자 국민경선제를 그 반전의 돌파구로 삼았다.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이 2002년 대선후보 선출방식을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정치를 바꾸고 싶은 시민들이 이 국민경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 당연했다. 3% 지지율의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됐다. 노무현 승리의 일등공신이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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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9월3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선대위 발대식에서 노사모 회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민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경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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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노사모를 정치팬덤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노사모는 팬덤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들은 일상정치에 개입하거나 팬질을 통해 경쟁자들을 악마화하거나 퇴출시키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지지’, 그것도 비판적 지지에 충실했다. 노사모가 정당보다 내러티브가 있는 인물을 선택하고, 그를 통해 사회변화를 일궈내는 학습경험을 만들어냈기에 정치의 개인화(personalization)를 자극한 것은 맞으나 팬덤정치가 득세하게 된 시점은 그 이후다. 팬덤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의 죽음, 나꼼수의 등장, 국회선진화법 통과, 박근혜 정부의 출범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때 그 일들이 어떻게 팬덤정치를 부추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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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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