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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2차전지 ‘꿈의 소재’ 실리콘 음극재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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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규모 4억달러서 10년 후 287억달러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배터리 기술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는 가운데 ‘꿈의 소재’로 불리는 실리콘 음극재 시장 선점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실리콘 음극재 시장이 활짝 열릴 경우 글로벌 2차전지 시장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매경이코노미

포스코실리콘솔루션은 최근 포항 영일만산업단지에 연산 550t 규모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준공했다. 사진은 실리콘 음극재 공장 전경. (포스코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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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음극재 개념 살펴보니

흑연 대비 에너지 밀도 높여

실리콘 음극재 개념부터 들여다보자.

배터리 소재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4가지로 나뉜다. 이 중 음극재는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 방출하면서 외부 회로를 통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음극재는 충전 속도, 수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배터리는 용량이 늘어나면 무게, 크기가 늘어나고 반대로 용량을 줄이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이때 음극재 역할이 중요하다.

전기차 중량을 고려하면 배터리 무게와 크기를 무작정 늘리기 어려운 만큼, 음극재 원료를 바꾸면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 에너지 밀도가 올라가면 배터리 내부에서 리튬이온이 오가는 거리가 짧아져 배터리 충전 속도, 출력이 높아진다.

그동안 음극재를 만들 때는 규칙적인 층상 구조로 쌓인 흑연을 주로 사용해왔다.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나뉜다. 천연흑연은 저렴하지만 사용 중 팽창 문제가 생겨 구조적 안정성이 점차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에 비해 3000도 이상 고온에서 열처리해 만들어지는 인조흑연은 천연흑연보다 구조가 균일해 안정성이 높다. 다만 추가로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해 가격이 비싸다. 인조흑연을 생산하려면 정유공정 부산물인 ‘석유계 피치’나 제철공정 부산물인 콜타르 원료를 가공해 침상 코크스, 즉 철강용 석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를 분쇄한 후 뭉쳐서 가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흑연의 한계가 부각되면서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은 고용량 배터리 제조를 위해 차세대 음극재 소재를 잇따라 개발하는 중이다.

차세대 소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실리콘 음극재다. 간단히 말하면 흑연 대신 실리콘을 이용해 제조하는 음극재다. 실리콘 음극재는 실리콘 입자에 산화물계 실리콘(SiO₂)을 합성하는 ‘산화규소(SiOx)’ 제품, 실리콘 입자에 탄소 소재를 혼합하는 ‘탄화규소(SiC)’ 제품으로 나뉜다.

배터리에 실리콘이 쓰이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실리콘 음극재의 단위 에너지 용량이 흑연보다 20배 이상 높다. 덕분에 리튬이온 전지에 대부분 적용되는 흑연 음극재보다 에너지 밀도를 4배가량 높일 수 있다. 에너지 밀도를 보면 흑연은 1g에 350㎃h인 데 비해, 실리콘은 1500~2000㎃h에 달한다. 전기차 주행 거리 향상뿐 아니라 충전 시간 단축이 가능한 ‘신개념 음극재’로 불리는 이유다. 실리콘 음극재 비중이 10%를 넘으면 대략 30분 이상 걸리는 전기차 충전 시간을 5분가량으로 줄일 수 있다.

글로벌 전기차 업체마다 전기차 주행 거리 확대, 급속 충전에 안간힘을 쓰는 만큼 실리콘 음극재 몸값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실리콘 음극재 시장은 2022년 4억달러(약 5340억원)에서 2032년 287억달러(약 38조3100억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 자료를 봐도 실리콘 음극재 수요는 올해 1만t에서 2030년 15만7000t으로 15배가량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차전지 음극재 시장에서 실리콘 음극재가 차지하는 비중도 2030년 7%, 2035년 10% 수준까지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워낙 시장 전망이 밝다 보니 국내 기업들도 실리콘 음극재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7월 실리콘 음극재 전문 기업 테라테크노스를 인수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포스코실리콘솔루션’으로 사명을 바꾼 이 회사는 최근 포항 영일만산업단지에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준공했다. 전기차 27만50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연산 550t 규모다. 2030년까지 연산 2만5000t의 실리콘 음극재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대주전자재료는 중소기업 중 실리콘 음극재에서 강점을 보유한 회사다. SiOx 계열 실리콘 음극재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해 양산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주전자재료의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한 전기차는 포르쉐 타이칸, 아우디 e트론 2개 차종이었다 올 들어 9종으로 늘었다. 대주전자재료는 2025년까진 연 생산량을 2만t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SK그룹도 실리콘 음극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SK㈜ 자회사 SK머티리얼즈와 그룹14테크놀로지 합작법인 ‘SK머티리얼즈그룹14’는 지난해 경북 상주에 연간 2000t 규모 계열 실리콘 음극재 공장을 완공해 시가동 중이다. 본격적인 양산은 올 상반기 내 이뤄질 예정.

SK머티리얼즈그룹14는 추가 증설을 통해 2025년까지 생산량을 연산 1만t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한솔케미칼도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북 익산에 약 850억원을 들인 Si-C 공장을 완공해 가동 중이다. 연산 750t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LG화학은 아예 기술 차별화에 나섰다. 실리콘을 100% 넣은 음극재 ‘퓨어 실리콘’을 개발 중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성장 전략 발표를 통해 퓨어 실리콘을 핵심 개발 과제로 선정했다. 퓨어 실리콘은 일반 실리콘 제품에 비해 실리콘 비중이 높은 만큼 배터리 성능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아직까지는 국내 기업 기술력이 취약하다 보니 글로벌 업체들과 손잡는 사례도 적잖다.

롯데케미칼 동박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스타트업인 ‘엔와이어즈’에 지분을 투자해 기술 확보에 나섰다. 이 회사는 이번 지분 투자를 바탕으로 향후 고성능 실리콘 음극재를 대량 생산하고 기존 동박 사업과의 시너지도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이다.

SKC는 영국 실리콘 음극재 기업 넥세온에 약 8000만달러를 투자해 기술을 확보했다. 지난해 자회사 ‘얼티머스’를 설립했으며 올 상반기 파일럿 라인에서 실리콘 음극재 샘플을 생산한다. 연산 생산능력은 1500t 규모로 2025년 양산 예정이다.

엘앤에프는 최근 일본 화학사 ‘미쓰비시케미칼’과 ‘차세대 음극재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기존 양극재에서 나아가 음극재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매경이코노미

실리콘 음극재 시장 앞으로는

양산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시급

실리콘 음극재 시장이 커지지만 마냥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은 리튬이온 전지의 기존 음극 소재인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가격은 흑연계에 비해 8배 가까이 비싸다.

또 실리콘 음극재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면 부피가 흑연보다 5배 이상 팽창한다. 팽창하면 입자가 부서져 균열이 생기고 배터리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밀도 상승과 충전 시간 단축 등 각종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5% 수준으로 소량 첨가하는 방식이 사용돼왔던 이유다.

결국 관건은 음극재에 흑연을 쓰지 않고 100% 실리콘 소재만 사용하면서도 양산을 통해 얼마나 가격을 낮추고, 효율을 높이는지에 달려 있다. 업계에서는 실리콘 음극재 생산이 비약적으로 확대되면 가격이 수년 내로 ㎏당 40달러 수준까지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보지만 기존 흑연 음극재를 대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제한된 배터리 무게 속 효율 향상을 위해 실리콘 음극재를 쓰는 비중은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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