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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선’ 넘은 일본…‘라인’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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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국 데이터 보호주의로 한국 미래 산업 놓쳐, 안 좋은 선례 남겨

한일 외교와 투트랙으로 플랫폼 등 미래 산업 육성 위한 정부 대응 필요

경향신문

지난 5월 9일 오후 라인야후가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도쿄가든테라스기오이타워에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걸어가는 사람 앞으로 ‘라인야후’라고 적혀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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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야후의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라인야후는 네이버가 개발한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포털 사이트 야후를 운영하는 회사로, 양사가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5월 9일 열린 결산설명회에서 네이버가 보유한 A홀딩스 지분 일부를 오는 7월 초까지 사들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A홀딩스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해 설립한 라인야후의 최대 주주다.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주식 1주만 넘겨도 라인야후 경영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일본 정부가 요구한 라인야후의 경영 체제 재검토가 현실화하는 것으로 일본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라인야후를 완전한 일본 기업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이버는 일정 지분을 내주되 최대한의 실익을 거두는 방향 등 모든 것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결산설명회에서 “라인야후 자본 변경안을 두고 네이버와 논의하고 있다. 7월 초까지 협상을 타결하는 게 목표”라며 매각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야카와 CEO는 “라인야후 측 요청에 따라 보안 거버넌스와 사업 전략 관점에서 자본 재검토를 협의 중”이라며 “아직 합의에 이른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것에 네이버가 소극적이거나 저항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네이버도 소극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라인야후도 지난 5월 8일 열린 결산설명회에서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이사를 사실상 경질해 이사회를 모두 일본인으로 구성했다. 또 네이버와의 위탁관계를 차례대로 종료해 기술적인 협력관계에서도 독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결별을 공식화했다.

다만 거래 금액 등에서 양측 견해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부에서도 지분 재조정이 쉽지 않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네이버에 의존하는 구도가 상당 기간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일정한 수의 A홀딩스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등의 안이 나오고 있지만, 향방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디지털 정책 전문가인 사토 이치로 국립정보학연구소 교수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라인야후가 기술 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네이버와의 기술력 격차가 커 1~2년 안에 (격차를) 메울 수 없다”고 말했다.

■ 개인정보 유출이 경영권 박탈로 비화

이번 사건은 지난해 11월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약 52만 건이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네이버 클라우드와 업무를 위탁하고 있는 회사 직원이 모두 사이버 공격을 받아 생긴 일이다. 통상 이런 경우 재발 방지 조치를 요구하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과태료 등의 조치를 내린다. 실제로 페이스북 등 다른 외국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유출했을 때도 일본은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일본 총무성은 행정지도를 통해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해 논란이 커졌다. 데이터 유출 사고 원인과 기업의 지분구조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고, 라인야휴가 재발방지대책을 제시했음에도 올해 3월과 4월 두 번이나 행정지도를 내리자 일본 언론이 “이례적”이라며 먼저 보도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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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야후 지분구조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의존해 해킹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는 것이 행정지도를 요청한 이유였다. 행정지도는 일본 총무성이 개인과 기업에 협력을 요구하는 지도 행위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관료제가 강한 일본에서는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고는 사업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일본 총무성은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를 합친 기관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자국의 대표 플랫폼을 한국 기업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것에 불편함을 공식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엔 갈등이 봉합된다고 해도 향후 다른 행정지도로 규제를 이어가면 일본에서의 플랫폼 사업은 힘들어진다. 이에 네이버도 소프트뱅크와의 협상에서 해외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지분에 대한 대가를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도 지난 5월 3일 콘퍼런스콜(투자자 설명회)에서 “(일본의 행정지도는) 따를지 말지를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에 기반해 결정할 문제로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혀, 매각 가능성을 시사했다.

네이버가 실제 라인 지분을 매각하면 인수·합병 등을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네이버는 라인야후 지분 64.5%를 보유한 A홀딩스 지분을 절반가량 소유하고 있다. 라인야후 시가총액 약 25조원 중 32.3%에 달하는 8조1000억원가량이 네이버 몫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태 지분을 매각하면 10조원가량을 챙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네이버가 수십 년간 공들여 추진한 해외 사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라인은 한국 기업이 세계 무대에 진출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일한 사례다. 당장 라인야후와 관계가 단절되면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비즈니스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이 본격화되고 있는 일본 IT 시장에서 네이버가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동남아 시장 확장 기회마저 소프트뱅크에 넘기게 될 수 있다. IT 공정과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 등은 “미국 등 타국 IT 기업의 데이터 보관에 대해선 관대하면서 유독 한국 기업에만 엄격하다면 우방인 한국에 대한 중대한 차별행위”라며 “이번 사태를 묵과하면 향후 한국 기업이 서비스하는 다른 국가에서 동일한 요구에 직면할 수 있어 정부는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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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야후를 공동 설립한 네이버 이해진 창업주(왼쪽)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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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2011년 6월 일본에서 라인 서비스를 출시한 뒤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9600만 명에 달하는 ‘국민 메신저’로 성장시켰다. 일본을 발판삼아 태국(5500만명), 대만(2200만명), 인도네시아(600만명)를 포함해 아시아 시장에서 2억명의 라인 이용자를 확보했다. 라인야후 자회사인 ‘Z중간글로벌(Z Intermediate Global)’은 일본 이외 글로벌 사업 개발과 확장을 맡은 한국법인 라인플러스 등을 보유하고 있다. 라인야후 지분 매각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메신저, 인터넷은행, 캐릭터 사업 등을 키울 기반을 잃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 측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자본 변경을 검토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라인 야후 사태 관련해 네이버의 입장을 존중하며 차질 없이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5월 8일 “네이버가 중요하고 민감한 경영적 판단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정부가) 끼어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한국 기업이 해외 사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고 밝혔다. 기업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네이버 요청에 도움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 라인 데이터 유출·한국 국적 논란 시달려

데이터 유출 이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아사히신문은 심층보도를 통해 라인 이용자 간에 주고받는 대화 서비스의 모든 사진과 동영상이 한국에 있는 서버에 보관되고 있는데, 이용자들이 볼 수 있는 라인의 개인정보 관련 지침에는 그런 상황이 충분히 기술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라인이 서비스에 사용하는 인공지능(AI) 등의 개발을 중국 상하이에 있는 업체에 위탁, 이 업체 직원이 접근 권한을 갖고 있어 자칫 개인정보가 중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데이터 사고가 발생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라인야후는 지난 3월 첫 행정지도 조치를 받은 뒤 총무성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네이버와 네트워크 완전 분리에 2년 이상 걸린다는 전망과 구체적이지 않은 안전 관리 대책을 제시했다. 해당 보고서는 총무성 관계자들의 화를 돋웠고, 한 간부는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기저에는 국적 논란도 깔려 있다. 라인은 출범 당시 네이버의 자회사이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력이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자국중심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한국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는 건 쉽지 않았다. 네이버는 고도의 현지화 전략을 택해 현지 경영진 중심으로 사업부를 꾸리고 국적 논란이 일 때는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이사회의 과반수가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다”라는 등의 입장을 내며 논란을 피해 갔다. 하지만 반한 감정은 끊이지 않았고 한국 국가정보원이 네이버 라인을 통해 일본인을 감청하고 있다는 소문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네이버가 고심 끝에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은 이유다.

국적 논란이 일만큼 라인은 일본의 공공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 인구가 대략 1억2300만명 정도 되는데 그중 80%에 달하는 9600만명이 쓰고 있다. 라인은 IT 산업이 뒤처진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디지털화를 일부 수행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기능도 갈수록 다양해져 행정 업무와 결제 등 사회 인프라로 거듭나며 생활 곳곳을 파고들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라인으로 구조를 요청하고 생존을 확인하는 ‘핫라인’으로 활용했다. 지자체는 코로나19 알림 응용 프로그램으로 라인을 쓰기도 했다. 배달과 전자상거래, 간편결제 앱과 연동되는 슈퍼앱으로 일본에선 라인 없이 생활할 수 없다.

문제는 일본에 라인을 대체할 만한 토종 플랫폼이 없는데, 라인의 영향력과 의존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공적 인프라를 언제까지 한국 기업에 의존할 것이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집권당에서는 라인이 공공재라며 “라인과 네이버 간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노골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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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보호주의에 한국 미래 산업 휘청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지분 관계 정리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데이터 주권’에 대한 우려가 있다. 미래 산업인 플랫폼과 인공지능(AI)을 키우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데이터 주권은 플랫폼과 AI에 대한 통제권을 자국 정부와 기업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 기업이 소유하면 자국민의 데이터가 유출돼 경제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플랫폼 업체 간 국경을 높이고 있는 건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이른바 자국 데이터 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강제 매각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틱톡은 1년 내 미국 기업에 운영권을 매각해야만 미국에서 서비스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이유도 국가 안보였다.

중국도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미국 기업 애플에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앱을 중국 앱스토어에서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국산 플랫폼이 없는 유럽연합은 디지털시장법 등으로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구글 등 해외 빅테크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이른바 디지털 빗장을 내걸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통제권을 외국 기업에 뺏기면 경제 주도권을 잃는 것은 물론 자국민 정보의 해외 유출 위험도 있어서다.

해외에서는 데이터 주권이 국익 차원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는 “결과적으로 일본의 자국 데이터 보호주의로 한국의 미래 산업을 놓쳤다”며 “내부적으로 공론화하고 여론전을 벌인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눈에 보이는 충분한 대응이 없었다. 외교와 투트랙으로 플랫폼·AI 등의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한·일 관계 등의 외교 문제는 별도로 풀어가 돼 산업적으로 부당하고 불리한 차별 대우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데이터 주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왔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는 “한국의 개인정보나 데이터가 알리·테무 등의 외국 기업으로 얼마나 흘러가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데이터가 AI 등 미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국민의 정보 주권을 지키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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