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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혼자 사는 노인 등쳐먹었다”…신출귀몰 ‘부동산 사기꾼’ 이야기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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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사기꾼들 / 신조 고 지음 /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펴냄


매일경제

한 공인중개사무소가 영업을 중단한 채 문이 닫혀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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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은 아내와 사별하고 실버타운에서 혼자 사는 78세 남성 시마자키 겐이치였다. 이 남자의 신분을 위조한 대역은 고토. 70대에도 빚을 갚기 위해 지하주차장에서 일하는 고토에게 양손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발라 지문을 숨기고 손바닥에는 초극박 인공 필름을 붙였다. 신분증부터 도장과 물건 열쇠까지 전부 위조품이었다.

스파클링 플래닝이라는 회사에 모인 8명은 명함 교환을 끝내고 거래에 나섰다. 에비스역에 가까운 1등지 343㎡ 토지를 7억엔에 살수 있게 된 원룸아파트 개발 회사는 이 사기의 실체도 모른체 군침을 흘린다.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사기꾼 일행은 바람처럼 사라져 고급 바에서 파티를 즐긴다.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악덕 부동산 업계를 묘사한 데뷔작으로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신조 고의 신작 소설이 출간됐다. 작가는 폭행으로 소년원을 들락거리고 마약까지 손을 대다 폭력 서클을 탈퇴한 후 독하게 공부해 게이오대에 입학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마약, 사기, 다단계 등 무자비한 악당들만을 다루는 소설을 연이어 성공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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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에서는 타인의 부동산을 이용하여 돈을 가로채는 사기꾼 집단, 이른바 ‘지면사(地面師)’들의 조직적인 범행을 끈질기게 취재해 탄탄한 사실성으로 무장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완성했다. 이 소설은 2017년 일어난 세키스이하우스 사건을 보티브로 삼았다. 작가는 현장을 끈질기게 취재해 이들의 범행을 소설로 되살려냈다.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일행의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서류나 인감 등을 3D 프린터를 사용해 위조하고 IC칩을 내장시키는 수법을 사용한다.

주인공은 불의의 화재 사고를 당해 가족을 잃고 되는 대로 살아가던 다쿠미다. 그의 앞에 거물급 지면사 해리슨이 나타난다. 각종 부동산 거래 법령은 물론 자치체 조례에도 정통하고 형사소송법 조문과 판례를 술술 암송할 정도로 박식한 해리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다쿠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면사로서 요구되는 기술을 가르쳐주며 자신의 조직에 합류시킨다.

부동산 사기 계획을 지휘하는 지면사, 정보를 수집하고 타깃을 물색하는 도면사, 소유자를 사칭할 배우를 고르고 교육시키는 수배사, 서류와 인감을 만드는 위조범과 돈을 세탁하는 전문가까지 합류한 사기집단은 범죄영화 ‘오션스11’을 연상시킨다. 실버타운에 입소한 노인의 정보만으로 7억엔짜리 사기를 계획하는 등 이들이 노리는 것은 노인, 독신 여성, 승려가 소유한 건물과 저택, 그리고 땅이었다.

점점 대담해지는 일행은 여승(女僧)의 100억엔짜리 사찰을 파는 사기에 도전하면서 집요하게 이들을 뒤쫓는 다쓰 형사와 맞대결을 하게 된다. 지면사 사기는 피해 입증도 어렵고,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회적 문제의식을 재기하며 실화를 소재로 신출귀몰한 악인들의 묘기에 가까운 사기행각을 쫓아가게 만드는 스릴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올해 넷플릭스에서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오네 히토시 감독이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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