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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한러 관계, 저절로 회복될까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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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13일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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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면 한-러 관계 또한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미 남북 관계와 미-러 관계 악화가 커다란 악재로 부상했고 그 반전 가능성도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중심의 친서방 정책만으로 이러한 외교적 난제가 저절로 풀리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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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한-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국-러시아 사이의 강대국 정치와 북-러 관계 밀착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9월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렸던 푸틴-김정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군사협력이 가시화되고 있고 고위급 인적 교류 또한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 진전이다.



한-러 관계의 불편한 현주소는 2월 초 양국 외교부 대변인의 설전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북한은 ‘선제적 핵 공격’을 법제화한 세계 유일 국가”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는 북한을 겨냥한 공격적 계획을 흐리려는 목적”에서 나온 발언으로 “혐오스럽고 편향됐다”고 논평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도 “수준 이하의 무례하고 혐오스러운 궤변”이라고 맞받았다. 3월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전체회의에서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 결의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한-러 관계 악화가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친서방 편중 외교에 기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지만, 4월27일 케이비에스(KBS) 대담에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를 단호히 부인했다. “국제규범에 기반해 한-러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국제정세 블록화 가속 등 새로운 외생 변수가 없다면 한-러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비쳤다.



비슷한 시기 ‘2024 모스크바 핵확산 방지회의’에서 필자가 만났던 러시아 정부 관료들이나 한반도 전문가들도 장 실장과 같은 견해였다. 우선 한국과의 경제 협력은 러시아의 경제 발전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한-러 관계가 조속히 정상화돼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러시아 시장에서 현대차, 기아 등 한국 자동차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고, 필자가 묵었던 롯데호텔은 모스크바 최고의 호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국을 비우호국 명단에 올려놓았지만,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높았다.



그러나 이들은 추후 한-러 관계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첫째,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살상용 무기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러시아도 한국을 적대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둘째, 러시아의 대북 협력은 생필품과 에너지 등에 국한될 것이므로 한국은 러-북 관계 개선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첨단 군사기술의 대북 공여 등 한국 정부가 우려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셋째, 한국의 대러 제재 동참에 대해서는 러시아도 상응하는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 일본처럼 대러 제재에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없느냐는 반문을 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독자 제재와, 아직 계약이 정식으로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조선소와 계약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5척 중 10척의 선박 블록과 기자재 제작을 중단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볼쇼이발레단의 내한공연 취소에 대해서는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 문화, 인적 교류는 지속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강변이었다.



사실 살상무기 제공 여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사그라질 이슈겠지만, 북-러 관계 밀착과 군사협력 문제는 전쟁 종료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 러시아 쪽의 구두 약속을 그대로 수용할 만큼 두 나라 사이에 신뢰 수준이 높지 않다. 더욱이 이 사안에는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현격한 시각 차이가 얽혀 있다. 러시아 정부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빈도와 강도,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한국 정부의 킬체인 구축 등에 관해 비판적이고, 한·미·일 세 나라의 군사공조 강화에 대해서도 극도의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이 주도해온 기존 대북제재 체제에 대해서도 비협조적이다. 러시아가 대북 제재와 대러 제재를 한바구니 안에서 사고하다 보니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은 더욱 줄어든다.



결론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면 한-러 관계 또한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미 남북 관계와 미-러 관계 악화가 커다란 악재로 부상했고 그 반전 가능성도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 중심의 친서방 정책만으로 이러한 외교적 난제가 저절로 풀리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큰 틀의 외교정책 방향과는 별개로 개별 국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대하는 섬세한 외교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러한 정밀성이 결합할 때에라야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지향점 또한 더욱 큰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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