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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조미 수교 이래 최초의 女 주미 공사 탄생…142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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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의 외설]

안세령 전 국제경제국장, 주미 경제공사 발탁

미 대선 앞 경제통상 최전선 총괄

安 “첫 여성 공사로 불리고 싶지 않아”

그 정신이 진정한 커리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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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미국 여성 작가 매리 카사트(Mary Cassatt·1844~1926)의 1905년 유화 작품 ‘해바라기를 단 여인(Woman with a Sunflower)’. /미국 국립미술관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내셔널 갤러리)을 다녀왔습니다. 미술관 서관을 둘러보다 한 작품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미 여성 작가 매리 카사트(Mary Cassatt·1844~1926)의 1905년 유화 작품인 ‘해바라기를 단 여인(Woman with a Sunflower)’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림에 한 엄마가 가슴팍에 커다랗게 활짝 핀 해바라기를 달고 자신의 어린 딸과 함께 손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손거울 속에는 야무진 표정의 딸 아이 얼굴이 비칩니다.

그림 속 ‘거울’은 종종 작가 본인의 이미지와 정체성, 또는 어떤 의지를 투영하는 통로로 사용됩니다. ‘해바라기’는 특유의 밝은 색감과 큼지막하게 핀 형태로 ‘재물’이나 ‘희망’ 등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메시지를 나타냅니다.

관심이 가서 미술관 자료를 들춰봤더니 이 그림에서 해바라기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해바라기는 ‘여성의 참정권(suffrage)’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에서 딸 아이는 엄마의 무릎에 앉아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손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이는 “딸 아이가 엄마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키워간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딸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딸의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해바라기가 여성의 사회 진출, 그리고 정치로의 참여, 즉 투표권을 상징한다면, 이 그림은 엄마들에게 딸을 진취적으로 잘 키우고 교육하라는 일종의 계몽 운동의 하나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 운동가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Elizabeth Cady Stanton)과 수잔 앤서니는 1867년 캔자스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 때 노란 해바라기 핀 착용을 퍼트렸습니다. 이에 노란색과 해바라기는 여성 운동의 상징이 되고 캔자스 주의 상징 꽃도 됐습니다.

카사트는 1915년 여성 참정권 캠페인 때 모금 마련을 위해 여러 작품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해바라기를 단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미 여성 참정권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1920년이 되어서야 미 연방 차원에서 인정됐습니다.

이로부터 딱 100년이 지난 2020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탄생했는데, 그가 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의 러닝메이트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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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령 주미 경제 공사가 지난해 8월 외교부 국제경제국장으로서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제3차 고위관리회의(SOM3)'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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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거의 회자되지 않았지만, 최근 한미 외교가에서도 가히 역사적이라 할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주미 공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조선왕조가 1882년 조미 수교를 맺은지 142년만입니다. 1887년 주미 조선공사관(대한제국 공사관 전신)에 박정양 공사가 초대 공사로 임명된 기준으로는 137년만입니다. 물론 당시 주미 공사는 공관장으로 대사급이었지만, 오늘날 주미 대사는 외교부 장관 또는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인사들도 임명될 정도로 장관급(경우에 따라선 그 이상의) 예우를 받기 때문에 주미 대사관 2인자인 주미 공사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여성 주미 공사의 주인공이 된 안세령(52) 공사는 1997년 외무고시 31기로 외교부에 입부해 경제 통상 업무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주미 공사에는 정무, 경제, 공공외교 등이 있는데 안 공사는 경제 공사로 임명됐습니다.

주미 경제공사는 대미 경제외교와 통상 현안을 총괄하는 중책입니다. 정무공사와 함께 대사관에서 대사의 뒤를 잇는 ‘2인자’로 꼽힙니다. 특히 올 11월 미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어 미국의 통상 정책 전망과 동향을 시시각각 파악해 대미 전략 수립의 안테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안 공사는 외교부의 대표적인 경제 통상 전문가로 분류됩니다. 부임 직전까지 국제경제국장을 만 2년간 지냈습니다. 그전에는 다자경제기구과장, 언론담당관, 주첸나이 부총영사, 북미유럽연합경제과장, 다자통상협력과장, 주미 1등 서기관 등을 지냈습니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콜롬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들어보니, 안 공사는 ‘첫 여성 공사’로 불리우길 썩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런 자세가 지금의 그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 조선일보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外說)’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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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노석조 기자·조지타운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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