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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공사비 상승에 ‘로또 청약’ 사라졌다, 강남 3구 분상제 물량에만 수요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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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아파트 분양가격이 매달 최고가를 경신하며 거센 상승세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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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특공이 많으면 뭐 하나요. 분양가 자체가 ‘넘사벽’인데. 집만 생각하면 결혼 생각이 싹 달아나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 김 모 씨는 올해 관심 지역 청약을 모두 포기했다. 직장이 있는 경기 수원 지역 신혼 특공을 기다렸는데 문제는 분양가였다. 최근 4개월간 공급된 수원 아파트 3곳의 분양가가 8억6000만~10억원(전용면적 84㎡)에 달해서다. 옵션 품목 등을 포함하면 신생아특례대출 등 신혼부부에 대한 정부 정책 지원 기준 9억원을 훌쩍 넘긴다. 김 씨는 “분양가가 너무 빨리 올라 이번 생애 내 집 마련은 못할 것 같다”고 낙담했다.

분양가가 뛰면서 서민들이 청약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 평균 분양가는 11억2000만원, 지방도 5억400만원에 달한다. 5년 전보다 30% 이상 뛰었다. 2019년만 해도 지방에서는 3억원대로 국민평수(전용 84㎡) 신축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인구소멸 지역’에서도 5억원 이하 분양가는 없다.

“분양가가 비싸다는 건 서울 얘기일 줄 알았는데 지방에서도 5억원이 웬 말인가요. 말이 신혼부부 특공이지 ‘신혼부부 패싱’이에요.”

충남 천안에 거주 중인 직장인 김 모씨는 최근 공급된 힐스테이트 두정역 분양가를 확인하고 좌절했다. 신혼특공이 전용 84㎡로만 154가구가 공급됐는데 분양가가 5억5000만원이었다. 김씨는 “취득세와 옵션비 등을 감안하면 분양가격이 6억원을 넘을 것”이라며 “지방까지 이런 가격인데 감당할 신혼부부가 얼마나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적으로 분양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멀어지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평균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5억7600만원으로 5년 전(4억4300만원)보다 30% 뛰었다. 서울 평균 분양가는 11억2256만원, 지방은 5억400만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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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부동산 침체로 집값이 떨어졌는데도 분양가가 계속 오르는 것은 불어난 공사비 때문이다. 이전만 해도 분양가격을 상승시키던 주요 원인은 땅값이었다. 그 때문에 지방보다는 서울·수도권 분양가 상승세가 강했다. 최근 들어 고분양가 주범은 급등한 자재비와 인건비다. 대표적인 건설자재인 시멘트의 경우 최근 3년 새 40% 넘게 올랐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정부가 올해 3월 고시한 기본형 건축비는 3.1% 상승했다. 정부 고시에서 상승률이 3%를 넘어선 것은 이번까지 모두 4번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 올해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 대상 확대, 층간소음 기준 미달 시 준공 불허 등과 같은 규제가 추가되면서 건축비가 늘어날 가능성은 더욱 높다.

건축비 상승은 서울과 지방 모두에 적용된다. 오히려 분양가 중 땅값 비중이 낮은 지방이 공사비가 출렁이면 타격을 더 심하게 받는 측면이 있다. 분양가격에 바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매달 발표하는 ‘민간 아파트 분양가 중 대지비 비율’로 연도별 평균을 계산하면 서울·수도권은 분양가격 중에서 공사비 비중이 40~60%인 반면, 지방은 80%에 육박한다.

실제로 올해 전국에서 분양한 1000가구 이상 아파트 건축비(전용 84㎡)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도 건축비만 최소 3억원에서 최대 4억원에 달했다. 최근 분양한 광주 위파크 일곡공원은 건축비만 4억5100만원, 충남 힐스테이트 두정역은 3억2000만원, 광주 봉산공원 첨단 제일풍경채는 3억4900만원, 경북 힐스테이트 더샵 상생공원 2단지가 3억2500만원이었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공사비만 3억원 넘게 드는데 대지비까지 더하면 아무리 땅값이 싼 지방도 분양가가 5억원 이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기존에 보유한 집이나 그간 축적한 자산이 있는 중장년층은 새 집으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러나 자산형성을 이제 시작하는 신혼부부는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평균 분양가가 10억원인 수도권에서는 신혼부부는 아예 청약을 포기한다. 10억원은 신혼부부 평균 소득(6790만원)의 14배 규모다. 지방이라고 청약이 쉬운 것은 아니다. 지방 평균 분양가 5억원도 자산이 없는 신혼부부로서는 ‘영끌’을 해도 감당하기 버겁다.

이런 이유로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일산 ‘휴먼빌 일산 클래스원’, 천안 ‘힐스테이트 두정역’, 광주 ‘송암공원 중흥 S클래스 SK뷰’와 ‘상무 양우내안애 퍼스트힐’등은 신혼부부 특공에서 줄줄이 미달됐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서 지방 미분양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방 미분양 물량은 올 1월 5만3595가구로 전월보다 1137가구(2.2%)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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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및 자재 수급 문제가 더해지면서 공사기간이 길어져 중도금 이자 부담이 늘어났다.


각종 규제로 길어진 공사기간
분양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금융비용도 크게 늘었다. 중도금 대출 이자가 대표적이다. 분양가 외에 옵션비, 중도금 대출 이자가 크게 늘면서 ‘실질적 분양가’가 높아진 것이다.

중도금 이자 부담이 늘어난 이유는 공사기간이 길어져서다. 각종 규제와 인력 및 자재 수급 문제가 더해지면서 공사기간이 늘어났다.

부동산R114가 올해 입주(예정) 아파트를 대상으로 분양부터 입주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조사한 결과 평균 2년 5개월(29개월)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4년간 평균 2년 1개월(25개월)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4개월이 더 늘었다.

부동산R114는 “앞으로는 신축 아파트에 대한 엄격한 층간소음 기준이 적용되고 부실공사에 대한 감독도 까다로워진다”며 “사전에 충분한 공사기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분양~입주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에는 입주까지 5년인 아파트도 나왔다. 경기 이천서희스타힐스스카이는 입주 예정이 2029년 1월이다. 분양부터 입주까지 약 5년인 셈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요즘 아파트 분양자들은 옵션과 확장비, 취득세에 중도금 이자까지 더하면 실질적으로 1억원 넘는 돈을 더 부담해야 한다”면서 “가뜩이나 분양가도 높은데 숨은 분양가가 1억원이 더 있으니, 웬만해서는 분양을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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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시장은 찬바람
정부가 심사를 통해 분양가를 억누르던 ‘분양가상한제’가 없어진 것도 분양가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1월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에서 분상제를 해제했다. 분양가를 억누르던 ‘분상제’가 사라지면서, 분상제 제외 지역은 시세보다 비싼 분양가로 신규 주택이 공급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가는 시세보다 비쌌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공급된 아파트 분양가는 3.3㎡ 당 평균 3508만원으로 전년(3476만원)보다 32만원(0.9%)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2022년 4130만원에서 2023년 4025만원으로 하락했다.

서울은 분양가상한제가 유지되고 있는 강남 3구 외 지역은 분양가가 시세보다 비쌌다. 지난해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 지역의 3.3㎡당 분양가는 평균 3505만원으로 전년(3442만원)보다 63만원 증가했다. 3.3㎡ 당 평균 매매가는 2022년 3276만원에서 2023년 3253만원으로 하락했다. 지난해에 분양가가 시세보다 252만원 비쌌다. 반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강남 3구는 지난해 3.3㎡당 평균 분양가가 3598만원으로 전년(6231만원)보다 대폭 내려 평균 시세(6521만원)를 한참 밑돌았다. 경기와 인천, 지방도 지난해 분양가가 시세를 추월했다. 경기도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지난해 1867만원이었던 반면, 매매가는 1710만원이었다. 인천도 지난해 3.3㎡당 분양가가 평균 1713만원으로 시세(1393만원)보다 320만원 높았고, 지방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575만원으로 시세(1139만원)보다 436만원이나 비쌌다.

분양가가 이렇게 높다 보니 청약 시장은 찬바람이다. 부동산R114가 한국부동산원의 청약홈 접수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3월 현재까지 분양된 전국의 아파트 71개 단지 가운데 48%인 34개 단지는 청약경쟁률이 평균 1 대 1에 못 미쳤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공사비가 급등하며 지난해부터 ‘지금이 가장 싸다’는 불안감에 청약 시장이 반짝 호조를 보이는 듯했지만,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분양가 상승이 지속되면서 청약 미달 단지가 늘고 있다”며 “이런 곳들은 계약에서도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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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이 잘되는 곳은 서울 강남3구 및 용산구 등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로또청약’뿐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 재건축 ‘메이플자이’는 총 81가구 일반분양에 3만5828명이 몰려 청약경쟁률이 평균 442.32 대 1로 올해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분양가가 3.3㎡당 6831만원으로 분양가상한제 대상 아파트 중 최고가였지만, 강남권 대단지인데다 주변 시세보다는 분양가가 싸다는 점이 주효했다.

차익이 확실한 분상제 청약은 올해도 높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대기 중인 강남 청약이 쌓여 있어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분상제가 적용되는 강남 3구에서 분양될 물량은 10개 단지, 1만8792가구다. 이는 최근 5년간(2020~2024년) 강남 3구 연간 분양 물량 중 가장 많다. 올 상반기에는서울 반포동 신반포15차 재건축 사업인 ‘래미안원펜타스’가 분양된다. 6월 입주를 앞둔 후분양 아파트다. 이 밖에 강남구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 서초구 ‘래미안원페를라’, 강남구 ‘래미안레벤투스’ 등도 분양을 준비 중이다. 일반분양 물량만 1000가구가 넘어 청약자들의 관심이 높은 서초구 방배동 ‘디에이치방배(방배5구역)’는 하반기에 분양할 예정이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분상제 단지는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고 후분양 단지도 많아 자금 마련 계획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선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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