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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유레카] ‘원영적 사고’라는 새로운 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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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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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meme)이란 유전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하는 문화적 요소를 의미한다.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에 등장한 말로,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자가 복제를 통해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 밈은 모방을 거쳐 개인의 생각·신념을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밈은 도킨스의 본래 정의와는 달리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용어·이미지·영상’ 등을 의미하게 됐다.



요 몇년 사이 엠제트(MZ)세대 사이에 유행한 ‘밈’ 가운데 하나는 ‘누칼협’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누군가의 협박 때문이 아니라 네 스스로 한 선택이니 그 책임도 네 몫’이라는 뜻이다. 즉, 불합리한 사회적 환경이나 구조를 탓하는 호소에 공감을 거부하고 냉소와 조롱을 퍼붓는 것이다. 누칼협과 쌍을 이루는 ‘알빠노’도 있다. ‘내가 알 바 아니다’의 줄임말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방관자적 태도다.



누칼협·알빠노와 함께 유행한 밈은 ‘중꺾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강조하는 셈이다.



최근엔 ‘원영적 사고’가 대세란다. ‘원영적 사고’는 아이돌 그룹 ‘아이브’ 멤버인 장원영의 ‘초긍정 마인드’에서 기인한 밈이다. 예를 들어 사려던 빵을 앞사람이 전부 사 갔을 때, 기다림을 불평하는 대신 “앞사람이 전부 사 가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다. 역시 행운은 나의 편!”이라고 기뻐하는 식이다. ‘오히려 좋아’라는 긍정적 사고는 엠제트가 본받고 싶어 하는 덕목이 됐다.



사실 이러한 밈들은 2030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외국어 능력, 좋은 학점, 다양한 경험을 쌓아도 취업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취업해도 방 한칸 구하기 어려운 박봉에 시달리며,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사치가 돼 버린 청춘의 현실. 이들은 ‘누칼협·알빠노’라며 냉소와 방관을 하다가도 ‘중꺾마’를 외치며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버틴다. 갈팡질팡하다 도달한 결론이 초긍정적인 ‘원영적 사고’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아니면 이조차 힘겨운 현실을 포기한 초탈적 태도는 아닌지 걱정해야 할까? 기성세대로서 ‘인터넷에 떠도는 그렇고 그런 유행’이라며 무심히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다.



유선희 산업팀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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