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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이 ‘숙취차단제’는 알코올이 간에 가기 전에 분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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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스위스 과학자들이 우유의 유청 단백질을 이용한 젤 형태의 숙취해소제를 개발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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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마실 땐 기분 좋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다음날 두통 등의 숙취 후유증을 감수해야 한다. 시중에는 다양한 숙취해소제나 음료들이 나와 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알약 하나로 이 짜증스런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연구진이 숙취를 ‘사후 해소’가 아닌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젤 형태의 알코올 분해 물질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이 젤은 치즈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유청 단백질 주성분인 베타-락토글로불린을 주된 재료로 삼고, 여기에 철분과 포도당, 금 입자를 섞은 것이다. 젤이 몸 속에 들어가면 효소처럼 작용해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부산물 없이 곧바로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바꿔준다.



대부분의 알코올은 위와 장의 점막을 통해 혈류로 들어간다. 이번에 개발한 물질은 혈류로 들어가기 전에 알코올을 분해해주는 게 특징이다. 이에 따라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생겨나지 않는다. 알코올 분해 장소가 간이 아닌 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숙취 증상을 유발하고 간을 손상시키는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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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트알데히드 생성 없이 알코올 분해





연구진은 우선 유청 단백질을 몇시간 동안 삶아 길고 얇은 실 모양의 미세 단백질 구조(원섬유, fibril)를 만든 뒤, 소금과 물을 첨가해 젤을 만들었다. 젤의 장점은 소화가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촉매로 사용할 철 원자를 원섬유 표면에 고루 발랐다. 이로써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바꿀 수 있는 준비는 마친 셈이다.



그러나 사람의 장에서 이 반응을 일으키려면 약간의 과산화수소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포도당과 금 나노입자를 반응시켜 과산화수소를 얻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금은 소화가 되지 않는 금속 물질이기 때문에 장에서 오랫동안 과산화수소를 생성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렇게 해서 다단계 효소 반응을 통해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복합 젤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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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 형태의 숙취해소제는 혈중 알코올 수치가 오르는 걸 효과적으로 막아준다. 취리히연방공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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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이 간에 흡수되기 전 위·장에서 작동





이 젤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연구진은 생쥐를 대상으로 10일 동안 알코올을 투여하면서 이 숙취 해소 젤의 효과를 실험했다.



먼저 알코올을 1회 투여하고 30분이 지나서 젤을 먹인 결과, 생쥐의 혈중 알코올 수치가 40%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알코올 투여 후 5시간이 지나고서는 수치가 56%까지 떨어졌다.



연구진은 실험 기간 내내 젤의 효과는 안정적이었다고 밝혔다. 알코올과 함께 젤을 매일 섭취한 생쥐는 간 손상도 적고 지방 대사와 혈액 지표도 좋아졌다. 또 비장(지라) 같은 다른 장기와 조직도 알코올 섭취로 인한 손상이 훨씬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품화를 목표로 이미 이 젤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 상태다. 실제 숙취 해소제로 시판하려면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지만 유청 단백질은 우유에서 추출한 것이므로 이 단계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개발된 알코올 분해제가 기존의 숙취해소제와 다른 점은 알코올 섭취로 인한 사후 증상보다 원인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에서 확실한 효과를 확인한 만큼, 사람들도 술을 마시기 전이나 마시는 중 이 젤을 복용하면 혈중 알코올 상승을 억제하고 숙취 증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젤은 알코올이 위장관에 있는 동안에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일단 알코올이 혈류로 넘어간 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사회적으로는 음주 자제를 권하는 분위기에 걸맞지 않아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진도 이 젤이 알코올 소비 자체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연구를 이끈 라파엘 메젠가 교수는 “이 젤은 알코올을 완전히 끊고 싶지도, 몸에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 흥미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DOI: 10.1038/s41565-024-01657-7
Single-site iron-anchored amyloid hydrogels as catalytic platforms for alcohol detoxification.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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