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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남중국해서 불 뿜은 ‘해성’…중국 선박 격침한 K-미사일 위력은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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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만든 무기들이 세계를 무대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이 무기를 처음 개발할 당시에는 외국에 의존하던 한국군 소요를 국내에서 충족하려는 목표를 갖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K-방산의 잠재력에 주목한 해외 국가들이 한국 무기를 도입하고, 이를 활용해 훈련이나 시험을 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성능을 입증하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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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해군 호위함 호세 리잘함이 지난 8일 남중국해 해상에서 해성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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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기를 다수 구매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이같은 사례가 눈에 띈다. 다수의 국가가 참가한 연합훈련이나 해당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훈련 등에 한국 무기가 투입되고 있다.

과거 내란 진압이나 쿠데타 등 국내 정치적 목표를 뒷받침하는데 주력했던 동남아 군대가 최근 들어 영토 수호 임무에 집중하면서 대외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미사일·전투기·잠수함까지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는 필리핀은 미국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영토 수호 의지를 과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 무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필리핀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미국과 함께 발리카탄 훈련(Exercise Balikatan)을 실시했다.

훈련은 1991년 이후 처음으로 필리핀의 12해리(22.224㎞) 영해 밖에 있는 남중국해 해상에서 열렸다. 훈련에는 1만6770명의 병력이 참가했으며 호주와 프랑스도 일부 참여했다.

훈련에는 필리핀 해군이 사용했던 보급선 레이크 칼릴라야함이 표적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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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해군 호위함 호세 리잘함에서 지난 8일 해성 대함미사일이 표적함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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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박은 2014년 필리핀 국영 석유 공사가 필리핀군에 넘긴 유조선으로 2020년 퇴역했다. 필리핀 해군의 유일한 중국산 선박이다. 필리핀은 의도된 것은 아니고 특정국을 겨냥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훈련의 핵심은 지난 8일 실시된 해상 타격훈련이었다.

필리핀군은 호위함 호세 리잘함에서 해성 대함미사일(SSM-700K)을 처음으로 발사, 36㎞ 떨어진 표적에 명중했다. 함정을 공격하는 훈련에 쓰인 플랫폼과 유도무기가 모두 한국산인 셈이다.

해성 대함미사일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LIG넥스원이 2003년 개발한 유도무기다. 해면 위를 스치듯이 낮은 고도로 비행, 180㎞ 이상을 날아간다.

레이더에 탐지되는 면적이 매우 작아 적함의 대공레이더에 탐지될 위험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소형 고속정부터 대형 항모까지 공격이 가능하며, 미사일정에서 구축함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함정에 탑재할 수 있다.

1차 공격에 실패해도 되돌아와 재차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최대 8개의 변침점을 적용해 아군 함정과 섬들을 피해서 적함을 타격한다.

전자전 상황에서도 제 성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고, 탄두중량이 250㎏에 달해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엑조세를 비롯한 유럽산 미사일과 비교하면 탄두중량이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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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F-16 전투기와 필리핀 공군 FA-50 경공격기가 지난 4월 11일 코프 선더 훈련에 참가해 함께 비행을 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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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해군은 해성을 기반으로 개발된 해룡 전술 함대지미사일도 운용중이다. 북한군 지대함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해병대 상륙에 앞서 해안포 기지나 지상군 집결지 등을 타격한다.

최대 200㎞까지 날아가 탄두에 탑재된 수백 개의 자탄을 통해 축구장 2배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다. 인천급과 대구급 호위함 등에 배치되어 있다. 한국 해군은 사거리 연장 등을 포함한 해성성능개량도 추진하고 있다.

필리핀 해군은 호세 리잘급(2600t) 호위함인 호세 리잘함과 안토니오 루나함이 해성 미사일을 운용한다.

HD현대중공업이 만든 호세 리잘급은 필리핀이 해군 현대화를 위해 처음으로 해외 조선소에 발주해 건조한 함정이다.

한국 해군 인천급·대구급 호위함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유류 수급 없이 최대 4500해리(8300㎞) 이상을 항해한다.

해성 미사일과 더불어 한화시스템 전투체계와 청상어 경어뢰, K-6 기관총 등 한국산 장비가 다수 탑재됐다. 예산 문제로 대공방어체계는 프랑스산 미스트랄 미사일을 쓰는 심바드-RC를 사용한다.

호세 리잘급을 도입한 필리핀은 지난 2021년 HD현대중공업에 3100t급 초계함 2척을 주문했고, 2022년엔 2400t급 원해경비함 6척을 주문했다.

이들 함정은 중국과의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세컨드 토머스 암초를 비롯한 필리핀 주변 해역 경비에 투입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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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해군 초계함들이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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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리잘함과 더불어 발리카탄 훈련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FA-50 경공격기도 모습을 드러냈다. FA-50은 표적을 향해 매버릭 공대지미사일을 발사, 명중시켰다.

2015~2017년 12대가 도입된 FA-50은 빈약했던 필리핀 공군력을 일거에 높인 기종으로 평가된다.

과거 필리핀은 초음속 전투기가 없어 중국 공군의 공중 압박에 맞설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FA-50을 들여오면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졌고, 중국 공군기도 FA-50이 출격하면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륙 지역의 반군 소탕작전에도 투입돼 상당한 전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연합공중훈련도 가증해졌다. 필리핀 FA-50은 지난달 미국과의 상호운용성 향상을 위해 필리핀 바사 공군기지에서 실시된 코프 선더(Cope Thunder) 연합훈련에도 참여했다. 지난 2월엔 미 공군 B-52H 폭격기와 함께 남중국해 상공을 날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산 잠수함이 위용을 과시했다. 군사전문매체 네이벌 뉴스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해군은 8~9일 발리해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에는 잠수함 알루고로함(1400t)이 참가, 훈련용 어뢰를 쐈다. 알루고로함은 인도네시아가 2011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 주문한 나가파사급 잠수함 3척 중 3번함이다.

1·2번함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됐고, 3번함인 알루고로함은 기술이전 계약에 따라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만들어졌다. 인도네시아가 잠수함을 건조한 것은 알루고로함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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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공군 F-16 전투기가 미 공군 B-52H 폭격기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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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밀리지 않겠다” 의지 과시

동남아에서 이같은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남중국해 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9단선을 설정, 남중국해를 사실상의 내해(內海)로 만들려 하고 있다.

필리핀은 국제상설재판소(PCA)에 소송을 제기, 2016년 중국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이 영유권을 고집하면서 필리핀 등 동남아 주변국과 대립하고 있다.

중국과 필리핀 간 최대 영유권 분쟁 대상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 외에도 스카버러 암초는 2012년부터 중국이 점유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이 일대에서 중국 해경선들이 필리핀 해경선에 물대포 공격을 가했다.

필리핀 서부 팔라완섬에서 서북쪽으로 200㎞ 떨어진 사비나 암초에선 중국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매립활동이 발견됐다.

이는 동남아 국가에겐 심각한 안보·경제적 위협이다. 광대한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더불어 중동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항로에 대한 영향력도 잃게 된다. 중국의 압박을 저지할 완충지대도 사라진다.

동남아 국가의 군부는 냉전 시절 국내 정치적 역할에 더 무게를 뒀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거나 내전 또는 테러를 진압하는 것이었다.

냉전 붕괴 이후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군부의 역할은 감소했다. 그러나 군부를 경계하던 민간 정치 지도자들은 군비 증강 대신 경제 발전을 우선했다. 그 결과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 시도를 저지하는데 필요한 억제력은 미흡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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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해군 호위함이 공해상을 항해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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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경제력이 향상됐다고 해도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과 해·공군력 경쟁을 펼치기는 어렵다.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 3척을 비롯해 최신 구축함과 상륙함, 스텔스 전투기, 전략폭격기, 탄도미사일 등을 보유하고 있다. 통상적인 군비경쟁 구도에선 동남아 국가들이 불리한 입장이다.

다만 중국의 압박에 대해 최소한의 억제력과 대응 능력은 갖춰야 한다.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를 무력화하지는 못하더라도, 견제라도 하려면 군 현대화가 필수다.

최근 동남아 국가 군대의 임무에서 영토 수호가 강조되는 것도, 전력증강에 눈에 띄게 이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중국 해상민병대의 회색지대 전술(본격적인 전쟁에는 못 미치는 도발)도 문제다. 이를 무력화하려면 원양 경비능력이 필요하다. 해양경찰 전력 강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규모는 작지만 현대화된 해·공군력이 있어야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군사적 연대도 쉬워진다. 서방국 군대의 기술수준에 어느 정도는 맞춰야 상호운용성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 무기는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창정비, 부품 공급이 더 쉽다. 북한군과의 전투에 대비해온 한국군의 경험을 전수, 실전능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 시도가 한층 뚜렷해지는 국면에서 동남아 역내 군사력 증강도 지속된다면, 한국 방산업계도 유도무기나 해상 무기체계에서 추가적인 수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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