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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인터뷰] 차종수 5·18 기록진실부장 "5·18 진상조사위 보고서 부실…대통령 공식 사과 등 담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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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18 왜곡' 온라인 게시물 1500여 건…모니터링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 필요해

5·18을 떠올릴 때 계엄군의 폭력보다는 지옥 속 꽃 피운 아름다운 시민정신을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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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뉴스룸 / 진행 : 안나경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5·18 민주화 운동이 올해로 44주년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아직 되풀이되고 있는데요. 관련해서 차종수 5·18 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나와 계십니까? 5·18 관련 왜곡된 정보들을 바로잡는 일을 하고 계신데 최근에 한 게임 로블록스 <그날의 광주>라는 게임을 놓고 논란이 있었어요. 경찰에 고발 조치를 하신 거죠?

[차종수/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 : 그렇습니다. 1980년 5월 항쟁이 치열했던 광주 금남로를 배경으로 시민군과 계엄군이 총격전을 벌이는 게임이었는데요. 비극적인 참상을 게임으로 재현한다는 설정 자체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무엇보다 5·18의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북한군 침투설을 차용한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에도 드러나듯이 5·18 북한군 침투설을 처음 거론한 것은 바로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신군부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직후 신군부는 계엄군 학살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습니다. 역사 왜곡은 물론 5·18 피해자들, 광주 시민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저희 5·18 기념재단과 광주시는 5월 8일 광주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앵커]

지금 그 게임 말고도 온라인상에 그런 왜곡된 게시물들이 1년에 실제로 몇 건 정도 모니터링이 되고 있나요?

[차종수/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 : 2023년도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영상, SNS상으로 온라인상의 왜곡 게시물인 1,530건을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왜곡 내용은 5·18 폭동설, 북한군 개입설, 유공자 명단 공개, 유공자 조롱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왜곡 문제와 더불어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 표현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모니터링과 팩트체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앵커]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4년 동안의 활동을 마치고 다음 달에 종합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인데 어떤 내용들이 좀 꼭 담겨야 한다고 보시나요?

[차종수/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 : 진상조사위원회는 5·18 진상법에 의해 실시된 최초의 조사위원회입니다. 그만큼 기대가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의 활동을 종합해 보면서 개별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요. 직권조사 사건 21건 중 6건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5·18 문제 해결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인 발포 책임자, 암매장 관련 내용 등이 빠진 결과입니다. 이외에도 과거 법원 판결보다 후퇴한 결론을 내놓은 경우 등이 있어서 지역사회에 논란이 되는데요. 5·18 진상조사 종합보고서에는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비롯한 국가가 앞으로 반드시 수행할 권고 사항이 제대로 담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조사위 생산 기록물을 재단으로 이관해서 학술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민간 차원 보고서를 만들어 국가 보고서 부족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차종수 부장님의 큰 형님께서도 5·18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을 하셨고, 또 40년이 흘러서 이번에 대학에서 명예졸업장을 받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좀 드셨을 것 같아요.

[차종수/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 : 저희 형님은 5·18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요. 항쟁에 참여했다가 시위 도중에 계엄군이 내리친 곤봉과 총 개머리판에 맞아서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전남대학교와 광주교도소로 끌려가서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석방이 된 이후 1982년에 전남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을 못한 채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명예 졸업장을 받아보기를 소원하셨는데 결국 보지 못한 채 형님을 따라가셨고 제가 대신 형님 명예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명예 졸업장을 산소에 갖다 놓으면서 어머님이 저승이라도 편히 쉬기를 빌었습니다.]

[앵커]

끝으로 우리 시민들이 5·18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기억해 주길 바라는지 한 말씀해 주실까요?

[차종수/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 : 5·18은 부당한 권력이 국가를 찬탈하려고 할 때 목숨을 건 저항으로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열흘간의 항쟁 기간 동안 눈부신 공동체 정신으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5·18이라고 하면 계엄군의 처참한 폭력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꽃 피웠던 아름다운 시민 정신이 있었음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앵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차종수 5·18 기념재단 기록진실부장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나경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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