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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글로벌포커스]'100% 관세' 전 세계 휩쓰는 보호무역주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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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 전략산업 겨냥 '폭탄 관세' 부과

'보호무역' 도미노 불가피…EU·G7 "검토"

IMF "세계 GDP 7% 증발"

미국이 전기차, 반도체 등 중국의 전략 산업을 타깃으로 관세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또 중국 커넥티드 차량 금수 조치,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 중단 의제도 꺼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과잉생산 억제를 겨냥한 서방의 압박은 유럽연합(EU)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 제재에 맞불 조치를 실행해 온 중국도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발(發) 관세 인상 움직임이 전 세계에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는 '도미노' 현상을 부르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4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행 25%에서 100%로 4배 인상했다. 철강·알루미늄과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관세는 7.5%에서 25%로, 반도체와 태양 전지 관세는 25%에서 50%로 대폭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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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그에 따른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따라 이같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관세에 대해 "전략적인 부문에서 신중하게 타깃을 맞춘 것"이라면서 "동맹을 훼손하거나 모든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무차별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보다는 중국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동맹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이어 '관세맨' 된 바이든…누가 되든 무역전쟁

그간 무역 전쟁은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에 따른 우려로만 여겨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당시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했고, 최근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60% 이상 부과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미국 대선 정국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이제 누가 당선되든 무역 대결은 불가피하다. 릭 뉴먼 야후파이낸스 선임 칼럼니스트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관세맨(tariff man)'으로 합류했다"고 말했다. 당초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트럼프 정권의 고율 관세를 조정한다는 입장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이 돌연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첨단 기술 수출 통제 조치에 이어 고율 관세 부과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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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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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정상적 경제·무역·과학·기술 활동을 미친 듯이 탄압하는 것에 가깝다"며 "미국의 일부 인사가 자기의 단극 패권을 지키기 위해 이미 이성을 잃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이에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中 '과잉생산'으로 경기 부양

미국과 유럽은 중국이 전기차와 철강 등 제품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자국 수요보다 많이 생산해 세계 시장에 저가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해소한다고 지적한다. 오토모빌리티와 중국승용차협회를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40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지만, 내수 시장에서 소비되는 자동차는 2200만대에 불과하다. 미·중 패권 대결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첨단 산업을 육성해 시장을 선점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100% 관세를 부과하는 전기차 산업을 예로 들면 중국 정부는 한번 파산했던 업체까지 되살릴 만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스콧 케네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신에너지 자동차에 1730억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제공했다. 이 외에도 저리 대출, 철강과 배터리 등 원자재 할인까지 전방위적으로 지원한다.

美·中 양자 대결 넘어 글로벌 '보호무역' 도미노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는 미·중 두 나라만의 패권 대결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백악관이 세계 동맹국의 대중 관세 동참을 예고한 만큼 보호무역 도미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대중 관세 인상 동참은 불가피하다. 중국이 과잉 생산 전략을 지속하는 한 미국이 관세로 저렴한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트린다 해서 초과 공급된 상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신 다른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다. 조셉 웹스터 애틀랜틱 카운실 선임 연구원은 미국의 관세에 대해 "EU는 자체 관세를 부과하거나, 중국산 제품의 홍수를 수용하기 위해 신속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유럽과 주요 7개국(G7) 등에서는 고율 관세를 검토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잔카를로 조르제티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14일 미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만큼 이에 대응해 유럽도 관세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르제티 장관은 오는 24~25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이 사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중국의 과잉생산을 우려하며 지난해부터 다양한 통상 조처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작년 10월 착수한 중국산 전기차 반(反)보조금 조사다. 또 16일에는 유럽철강협회(Eurofer)의 문제 제기에 중국산 주석 도금 강판(석도강판)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EU 집행위는 15일 미국의 중국산 관세 인상 관련 질문에 "EU도 같은 우려를 공유하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내에서 우리의 도구를 활용해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관세 협정을 체결한 제3국을 통한 중국의 우회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일찌감치 멕시코 공장 부지 물색에 나서는 등 우회로를 찾고 있다. 이에 미국은 관세 회피를 막는 후속 조치 마련에 나섰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16일 중국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태양광 패널의 경우 동남아 4개국에 대한 한시적 관세 면세 조치를 다음 달 종료한다.

글로벌 경제 타격 불가피…IMF "세계 GDP 7% 증발"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양국 간 무역 갈등이 글로벌 무역 협력과 경제 성장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IMF에 따르면 지정학적 블록이 형성되는 등 세계 경제 무역 분열이 극에 달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7%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과 독일의 GDP가 증발하는 것과 맞먹는 규모의 손실이다. 기타 고피나스 IMF 부총재는 "무역에 제한을 가하면 전문화로 인한 효율성 이득이 줄어들고, 규모의 경제가 제한되며, 경쟁이 줄어든다"며 "금융 분열로 인한 비용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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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글로벌 무역 갈등의 골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19년 세계 각국의 무역 제한 조치는 1000여건에 불과했지만, 2023년엔 3000여건으로 약 3배 뛰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진영(유럽·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중국 진영(러시아·에리트레아·말리·니카과라·시리아 등) 간 무역은 진영 내 무역 대비 12% 감소하고, 외국인 직접 투자는 20% 줄었다.

또 미국과 EU 등 주요국들이 치솟는 물가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중인 가운데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가격에 녹아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중 간 대결 구도가 강화되면서 보호무역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도 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의 첨단 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미국은 올가을 중국산 커넥티드 차량을 규제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 하원에서는 중국산 드론 관세를 30% 인상하자는 법안이 제출됐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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