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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저출생 특단 대책 급한데···소득기준 고집 '퇴짜' 놓는 사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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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책 불승인' 이유 보니

현금 주려던 산후조리비·교통비

사보위 거치면서 바우처로 바뀌고

난자동결 시술비는 소득 조건 생겨

출산가구 주거비도 수정 가능성

획일적 선별복지 고집···논란 커져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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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는 부모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 위해 소득기준을 없애거나 현물지원을 현금지원으로 바꾸려는 서울시 정책이 정부의 사회보장위원회(사보위)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초저출생 극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실무 부서는 저출생 대책에 선별복지 프레임을 적용하며 시대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서울경제신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서울시 저출생 정책의 사보위 승인·불승인 내역’을 보면, 서울시는 최근 3년간 저출생 정책과 관련해 사보위와 12건의 협의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7건은 서울시가 요구한 사항이 그대로 승인됐으나 5건은 조건부 내지 수정 승인됐다.

조건부·수정 승인 내역을 보면, 서울시는 지난해 산모가 본인 건강을 위한 의약품 및 한약조제, 산후조리 운동 등을 위해 사용하도록 100만원(신생아 1인당)을 지원하는 ‘서울형 산후조리경비 지원’을 신설했다. 서울시는 이를 사용처가 제한되는 바우처보다는 현금으로 지원해 산모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려 했으나 사보위를 거치면서 바우처 지원으로 바뀌었다. 임산부의 자유로운 외부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교통비를 보조하는 ‘임산부 교통비 지원’사업도 지난 2021년 도입 당시 서울시는 7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려 했으나 사보위는 교통카드 지급으로 수정했다. 현물지원인 바우처는 사용처를 미리 확인해야 하는 등 개개인의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고 사용방법도 번거로워 현금 지급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사보위가 바우처를 고수한 것이다.

서울시는 또 지난해 난자동결 시술 비용 지원을 신설하면서 소득기준을 두지 않으려 했으나 사보위는 중위소득 180% 이하로 제한해 조건부로 승인했다. 여기에 인공수정·체외수정 등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과 난자동결 지원이 중복되지 않도록 조건까지 달았다. 난임 지원을 받았다면 난자동결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소득기준을 둔 저출생 대책은 사보위의 수정없이 원안 통과됐다. 2022년 신설한 임산부·맞벌이·다자녀 가사돌봄서비스 지원 사업은 지원 대상을 중위소득 150% 한정해 원안대로 통과됐고, 지원 대상을 중위소득 120%에서 150%로 확대한 한부모 가사서비스 지원 사업도 수정 내지 조건 없이 통과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득기준을 없애거나 현금으로 지원하려 설계한 사업은 사보위를 거치면서 대부분 중위소득 150~180% 이하로 조건을 달거나, 현물지급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보위 이런 심사 기조는 약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복지 정책과 달리 저출생 대책만큼은 소득 기준을 없애고 현금 지급을 늘리고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저출생 지원 대책에 한해서는 소득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최근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밝히며 정책에 대한 원점 재검토와 함께 ‘특단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재의 사보위 정책 기조에 따르면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자녀 출산 무주택 가구 주거비 지원사업’ 사업도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 사업은 내년부터 자녀를 출산한 무주택가구에 소득 기준, 부모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 1명당 매월 30만원씩 지원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저출생의 이유가 다른데도 정부가 획일적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저출생 대책에 대한 소득기준 철폐를 주장해온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저출생 문제는 소득의 고하를 막론하는 만큼 소득기준을 두거나 현물로 지원하는 복지정책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중앙정부와 협의하는 제도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도입됐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를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한편에서는 지역에 특화된 복지 정책 시행을 가로막아 복지의 획일화를 초래하고 지방자치권을 형해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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