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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정욱식 칼럼] 유사시 무력통일도 배제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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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위기인가? 각 부문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혹자들은 ‘복합 위기’, ‘다중 위기’라고 표현한다. 여러 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악순환을 만들고도 있다. 출구도 처방도 마땅치 않은 현실을 보면서 세계적인 석학인 재래드 다이아몬드가 한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위기란 일반적인 대처법과 문제해결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선택적 변화’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이 있을까? 나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진지하게 토론해볼 수 있는 의제로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를 들고 싶다.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우리가 이러한 선택을 하면 다양하고도 이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얘기해보려 한다.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적대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의 위기이다. 둘째는 민생·불평등·인구소멸 등 한국 내부의 위기이다. 셋째는 기후재앙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위기이다. 이들 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이들 위기를 극복하려면 융합적 사고에 바탕을 둔 선택적 변화가 필요하다.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더라도 공론화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전쟁이나 ‘북한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무력으로 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군사전략은 평소에도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을 초래하고 있고 기후생태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북진통일’을 국시로 내세우곤 했지만, 작전통제권을 유엔사(미국)가 갖고 있었기에 허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미국이 만든 작전계획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의 무력침공시 방어·격퇴·보복에 한정되어 있었다. 전시 무력통일론이 작전계획에 포함된 해는 1998년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흡수통일 배제’를 천명했지만,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98에는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 이후 한국 정부의 변화와 관계없이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구체화·강화되어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도 그랬다. 김정은 위원장이 흡수통일을 시도한 것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좋은 토론거리이다.

더 확실한 기대효과는 한국 자체에 있다. 한국이 여전히 50만에 달하는 대군과 징병제를 고수하는 데에는 유사시 ‘북한 점령 및 안정화 작전’에 필요한 병력이 약 40만명이라는 군사적 필요가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 올해 60조원 달하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도 유사시 무력통일 완수에 필요한 무기·장비·훈련·부대운용에 들어간다. 이는 한국이 무력통일론을 배제하면, 병력과 국방비 감축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병력수를 30만 이하로 줄이고 모병제를 매력적으로 설계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젠더갈등·노동가능인구급감 등 우리사회 여러 문제를 완화하고 적응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줄어든 국방비를 교육·보건의료·신재생에너지·인프라 분야에 사용하면 방위산업보다 탁월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글로벌 위기의 핵심인 기후 문제 대처에도 효과가 있다. 전략폭격기 한 대의 1시간 탄소 배출량이 자동차 한 대 7년치에 해당될 정도로 군사 부문의 탄소배출량은 엄청나다.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로 실시되어온 한미연합훈련을 포함한 군사 활동의 대폭 축소로 이어질 수 있고 그만큼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안보를 무시한 발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유사시 무력통일을 배제해도 외부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억제 능력은 구비할 수 있다. 인구 급감 시대에 징집율을 높여 병력수를 채울수록 관리 부담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유사시 무력통일의 대상인 조선은 ‘가난과 고립에서 탈피하는 핵보유국’이 되고 있고 동맹국인 미국은 갈수록 미국인이 피를 흘리는 전쟁을 꺼려한다. 조선과 미국은 크게 달라졌는데, 한국이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고수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자문해볼 때이다. 또 이를 배제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토론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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