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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신의 직장' 사외이사로 퇴직 검사 대거 영입… "특수통·공안통 없으면 수사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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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기업 전직 검사 전성시대]
尹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최소 39명 영입
총수 검찰 특수수사 받은 기업 영입 두드러져
총수 수사 이력 없거나·총수 없어도 적극적
"정·관계 요직 검사 출신 크게 늘어"
기업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영향" 주장
한국일보

윤석열(오른쪽)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 2011년 11월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15층 회의실에서 최재경(가운데)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부산저축은행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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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 A사는 지난해 전직 검사장 B씨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대기업이 경영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전직 관료를 대관 로비용이나 사법처리 방어용으로 영입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검찰 내부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12년 말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검찰 개혁안을 놓고 대립하던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 감찰을 지시했을 때도 B씨와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의 입장은 엇갈렸다. 당시 최·윤 부장은 특수통, B씨는 공안통으로 잔뼈가 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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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1121350001035)

검찰 특수통과 공안통, 기획통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인사 등을 놓고 경쟁 관계가 심해진다. 현 정부 실세인 전직 검찰 특수통과 B씨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B씨와 같은 인사로까지 영입 대상을 넓혀왔다. 윤 정부 출범 전후부터 법조계에서 "대기업이 검찰 내 윤석열 사단 멤버, 아니면 특수부 검사 출신, 그마저도 없으면 그냥 검사나 수사관이라도 데려가려 한다"는 말이 회자된 이유다.

윤 정부 출범 전부터 최근까지 주요 대기업이 전직 검사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같은 시기 검찰에서 활동했던 특수통은 물론, 특수통의 라이벌 격인 공안통·기획통 출신까지 그 대상이다. 전직 검찰 수사관도 마찬가지. 현 정부에서 검찰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준 결과란 해석이 나온다. 재계는 지금 '전직 검사 전성시대'란 말이 낯설지 않다. 대기업들은 기업 경영에서 '사법 리스크'가 커졌고 검사 출신들이 기업의 법무 이슈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일 한국일보가 10대 기업을 통해 확인한 결과 윤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2021년부터 3년 동안 최소 39명의 전직 검사가 이들 기업에 사외이사나 임원으로 영입되거나 재선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의 1월 발표 등을 참고했으며 10대 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의 2023년 '공시 대상 기업 집단'을 기준으로 추렸다.

삼성엔 전직 검찰총장만 둘이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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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총수를 겨냥한 검찰의 특수수사를 받았던 대기업이 전직 검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품고 있다. 삼성그룹이 꾸린 진용이 가장 화려했다. 전직 검찰총장만 두 명이다. 삼성SDS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검찰총장이었던 문무일 사외이사를 지난해 영입했다. 삼성카드도 앞서 2022년 김준규 전 검찰총장에게 사외이사를 맡겼다. 삼성전자는 대검 중수2과장을 지낸 윤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인 최재경 전 대검 중수부장에게 2020년 법률고문 역할을 줬다.

SK그룹은 사내 임원으로 전직 검사를 대거 영입해 도드라진다. SK에코플랜트는 윤장석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을 2021년 법무ESG 부문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지난해 SK이노베이션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K가스는 이정우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에게 같은 해 법무총괄 역할을 맡겼다. 그는 SK디스커버리 법무실장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롯데쇼핑은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23기)인 조상철 전 서울고검장을 2022년 사외이사로 품었다. 차경환 전 수원지검장도 지난해 롯데케미칼 사외이사가 됐다. 롯데정밀화학은 최근 봉욱 전 대검 차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대검 차장을 지냈다.

총수, 검찰 수사 받은 지가 언젠데...

한국일보

윤석열(앞에서 네 번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2018년 1월 2일 서울 동작동 현충원을 찾아 문무일(앞에서 첫 번째) 당시 검찰총장, 봉욱(앞에서 두 번째) 당시 대검 차장 등 검찰 수뇌부와 참배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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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가 검찰 수사를 받은 지 오래고, '오너 3세 경영 승계'가 큰 문제없이 진행 중인 대기업조차도 전직 검사 스카우트에 적극적이다.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한화시스템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검 차장으로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구본선 전 광주고검장을 지난해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한화는 2022년 권익환 전 서울남부지검장을 사외이사에 포함시켰다. 한화임팩트도 같은 해 서지현 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파기환송심 끝에 무죄가 확정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그룹은 한 발 더 나아가 전직 검사의 사내 임원 영입에도 적극적이었다. 한화시스템은 2022년 최두헌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법무실 상무로 영입했으며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서동범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법무실장(상무)으로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오랜만에 전직 검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2023년 김형석 전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장을 법무1실장(전무)으로 스카우트했다. 현대차가 법무실에 전직 검사를 영입한 것은 18년 만이다. 현대오토에버는 최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법연수원 동기(27기)인 이선욱 전 춘천지검 차장을 영입했다. 현대건설도 지난해 민기홍 전 인천지검 공안부장에게 법무실장(전무)을 맡겼다.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서로 친밀한 사이인 전직 특수통 검사 선후배를 잇따라 영입하기도 했다. 현대캐피탈은 2022년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을, 현대위아는 지난해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을 각각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총수를 겨냥한 검찰 특수 수사를 받지 않았던 LG그룹과 GS그룹도 꾸준히 전직 검사를 품고 있다. 주식회사 LG는 지난해 조성욱 전 대전고검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LG전자는 1997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일하면서 윤석열 당시 검사와 '카풀' 출퇴근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를 2021년 사외이사 명단에 올렸다. 그는 윤 정부 초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GS건설도 2021년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지난해 3월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난 그는 같은 해 6월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GS건설은 올해 황철규 전 부산고검장에게 사외이사를 맡겼다.

조선업체이자 방산업체인 HD현대중공업을 계열사로 둔 HD현대도 마찬가지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윤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 검찰 특수통으로 활약한 여환섭 전 법무연수원장을 최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HD현대일렉트릭도 지난해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을 사외이사로 품었다. 같은 해 HD현대건설기계는 차경환 전 수원지검장에게 사외이사를 맡겼다.

"검찰, 금융위 등 '사법 리스크' 커져"

한국일보

윤석열(왼쪽) 당시 검찰총장이 2020년 1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구본선 당시 대검 차장과 이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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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가 없는데도 전직 검사를 적극 영입한 대기업도 있었다. 포스코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김강욱 전 대전고검장을 법무 및 대외협력 담당 고문(사장급)으로 영입했다. 같은 해 윤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영종 전 수원지검 안양지청장도 포스코홀딩스 법무팀장(부사장)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박하영 전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을 법무팀 법무담당(상무)으로 품었다. 김 부사장과 박 상무는 최근 고문으로 선임됐다.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이종백 전 서울고검장을, NH투자증권은 2022년 박민표 전 서울동부지검장을 사외이사로 각각 재선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윤 정부 들어 정·관계 요직을 전직 검사가 대거 차지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쏠림 인사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윤 정부를 맞아 대기업들이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란 것이다. 장유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 금융위원회 등에 의한 사법 리스크가 매우 커졌다"며 "전관예우가 일반화한 상황에서 선택적 수사·조사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수사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면 이들을 막아낼 수 있는 힘 있는 인사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이 검찰에서 윤석열 정부와 여권 요직의 검찰 특수통 출신과 라이벌 관계였던 공안통, 기획통 출신까지 대거 영입하는 일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유통과 화학이 주력인 롯데그룹 계열사에는 사외이사로 스카우트한 대검 공안기획관 출신이 두 명이나 있었다. 검찰 공안통은 간첩·학원·노동 사건 수사를 주로 한다.

영입 대상의 범위는 검사뿐만 아니라 검찰 수사관까지 넓어지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전직 검찰 수사관 두 명을 스카우트했는데 이들은 사내 연구원 소속 연구위원, 고문으로 각각 활동 중이다. 한화그룹에도 전직 검찰 수사관 한 명이 금융계열사 소속 임원으로 있다.

이같이 검찰 출신에 열광하는 대기업에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가 주특기인 이들이 독립성, 전문성을 갖추고 주주를 대신해 경영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냐는 것이다. 미국 등 자본시장이 발전한 국가에서는 자산가인 전·현직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전문 경영인이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는 경우가 많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요 대기업의 전직 검사 영입은 기업 총수나 임원의 (사법 처리) 방어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업 운영에서 정상적 모습은 아니다"라며 "형사 처벌 사전 대비용, 대 정부 로비용으로 임명하는 측면이 커 보인다"고 했다.

"수사경험 풍부해 법무에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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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당시 검찰총장이 2020년 1월 2일 검찰 간부들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를 위해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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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들 대기업은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검사가 법무 업무에 밝아 역할을 맡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업 총수나 임원이 업무와 관련해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경우 기업 법무실은 법률사무소(로펌)에 사건을 맡긴다. 하지만 수사를 직접 해 본 전직 검사가 사전 검토나 재판 대응전략 마련 등에서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검사 출신 법무팀 임원이나 사외이사는 판사나 변호사 출신에 비해 수사 대응 등 법무 감각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며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검사가 이 같은 업무에 더 전문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주로 사내에서 법무를 담당하며, 대관 로비나 사업 수주와는 무관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도 10대 기업의 전직 검사 영입 확대의 핵심 이유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 올해 적용 범위를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한 이 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조업, 공사 중 각종 사고 관련 법리 검토의 필요성도 커졌다"며 "이 때문에 이전보다 전직 검사를 더 많이 영입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사외이사로 영입된 전직 검사가 이들과 함께 기업 내 '레드팀'(조직 내 전략의 취약점을 발견해 공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직 검사라도 영입된 이후에는 조직 내부에서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이런 때 사외이사로 영입된 전직 검사가 회사 내부의 다른 전직 검사와 같이 입장을 나타내거나 대신 이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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