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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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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50대50인데 "주도권 있다"…'신'만 믿은 네이버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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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번진 ‘라인야후 사태’ 해부



■ 경제+

“네이버는 라인(LINE)으로 글로벌 진출 모델을 만들었다. 직원들이 발버둥치면서 괴로워하는 걸 봐서 나도 괴로웠다. 정말 성공하고 싶었다”(2016년 7월 15일, 라인 상장 기자회견)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을 때 여기서 죽나 싶을 정도로 라인 사무실이 있던 빌딩이 휘청였다. 10년간 고생했는데 (잘 안됐고) 사업을 더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압박감에, 회사 사무실에서 펑펑 울었다.”(2019년 한국사회학회·경영학회 공동심포지엄)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이하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직접 라인의 일본 진출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라인은 일본 국민 메신저가 됐다. 역경과 고난, 극복 서사까지 완벽히 갖춘 라인은 네이버 글로벌 사업의 아이콘이자, 이해진 GIO와 직원의 피·땀·눈물이 녹아 있는 서비스. 그런 라인을 놓고 네이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라인 사용자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일본 정부의 두 차례 행정지도가 이어지면서 지분 매각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지난 14일 대통령실에서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7월 1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개인정보 유출 재발 방지책 보고서에 지분 매각안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네이버로선 서둘러 지분 매각을 할 필요는 없게 됐다. 다만 협상이 끝난 건 아니다. 네이버는 중·장기 글로벌 전략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겠단 입장. 현재 소프트뱅크와 매각 적정가를 둘러싼 견해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업계에서는 연내 매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라인이 없어도 일본·동남아시아에서 네이버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빅테크 제국주의’에 저항한 ‘내수기업’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한 축이 되고자 하는 ‘팀네이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네이버가 라인 주식의 약 83%(당시 기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인은 한국 회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 같다. 그런데 네이버 주식의 약 60%는 외국인 투자자 소유다. 그 논리라면 네이버도, 라인도 한국 회사가 아니다.”(2016년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

이해진 GIO는 수차례 ‘라인의 국적을 묻는 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다르게, 일본에선 집요하게 “라인, 너는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지만,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건 네이버와 라인이다. 두 회사가 업무를 위탁했던 업체가 사이버 공격을 받으면서 51만9000건에 달하는 라인 사용자 개인정보가 유출됐기 때문. 라인야후 사정을 잘 아는 IT업계 관계자는 “라인은 독립 법인인데 현지 국가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인프라가 없을 정도로 네이버가 안일하게 운영했다”며 “그간 라인 해킹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했던 거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차례 경고음이 울렸지만, 라인과 네이버가 이를 놓친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지적이다.

2021년 라인야후의 경영 통합을 선언한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50대 50으로 A홀딩스(라인야후 모회사) 지분을 나눠 가졌다. 소프트뱅크의 결제 서비스 ‘페이페이’와 라인의 ‘라인페이’가 출혈경쟁을 하다 “이러다 다 죽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경영 통합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정작 한 몸이 된 이후엔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지난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라인 관련 긴급 브리핑에서 “네이버가 기술을 라인야후에 접목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분매각을 포함한 여러 대안을 중장기 비즈니스 관점에서 검토해 왔다”고 말했던 이유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합병 이후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A홀딩스 회장에 올랐지만, 이사회 의장은 공동대표인 미야우치 겐 소프트뱅크 사장이 맡았다. 이사회 역시 소프트뱅크 측 인사가 다수를 차지. 라인야후 이사회 중에선 ‘라인의 아버지’ 신중호 CPO(최고제품책임자)가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당시에도 “지분이 50대 50이면 주도권은 누가 쥐냐”는 질문이 많았다. 이때 네이버가 믿었던 구석도 신 CPO. 라인과 관련된 최종 결정은 그가 하기 때문에, 네이버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라인야후는 지난 8일 이사회를 열고 신 CPO를 사내이사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 A홀딩스 출범 당시 ‘경영은 소뱅, 기술은 네이버’라 협의했지만 사실상 기술만 넘어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이 커진 데는 라인야후의 안일한 대응도 한몫했다. 9일 아사히신문은 “지난 3월 첫 행정지도 조치가 내려진 뒤 라인야후는 총무성에 ‘네이버와의 네트워크 분리가 2년 이상 걸린다’는 전망과 구체적이지 않은 안전 관리 대책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총무성 관계자의 화를 돋웠고, 한 간부는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닌가”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라인야후를 제외해도 일본은 현재 네이버 글로벌 매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2020년 3분기부터 라인 매출은 네이버 연결 매출에서 빠졌지만, 라인은 네이버의 IT 인프라와 콘텐트 사업 등 일본 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라인야후 향(向) 매출은 722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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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네이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해 연결기준 연매출 9조6706억원 중 7%(6799억원)를 일본에서 벌었다. 네이버의 해외 매출(1조3526억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다. 네이버웹툰 일본 서비스 ‘라인망가’의 기여가 크다. 지난 1월 일본출판과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일본 만화시장은 축소 중이지만 웹툰 등 디지털 만화는 4830억 엔(약 4조원) 규모로 전년 대비 8% 성장했다. 라인망가가 발굴한 일본 웹툰 ‘신혈의 구세주’는 지난 1월 일본 현지 웹툰 최초 월 거래액 1억 엔(약 8억8000만원)을 돌파했다. 아울러 일본은 네이버가 보유하고 있는 검색, 플랫폼, 모바일, AI 등 특허 총2732건(지난해 말 기준) 중 23%(629건)의 특허를 등록한 곳이기도 하다. 네이버의 글로벌 확장 교두보인 셈이다.

콘텐트 영역에서 네이버와 라인은 깊이 얽혀 있다. 라인망가는 브랜드명에 라인이 들어갔지만 네이버웹툰의 사업이다. 2022년 네이버웹툰은 일본 계열사이자 라인망가 운영사인 ‘라인 디지털 프론티어’를 통해 ‘이북 이니셔티브 재팬’ 인수를 완료하고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당시 인수로 카카오픽코마에 빼앗겼던 일본 디지털 만화시장 1위를 탈환했다.

비좁은 내수시장, 글로벌 공략은 한국 기업의 숙명과도 같다. 일본 커머스 실험은 실패했지만, C2C(개인 간 거래)는 상승세다. 네이버는 국내 크림, 일본 빈티지시티, 북미 포쉬마크 등을 연결해 글로벌 시장에서 C2C 전선을 넓히고 있다. 네이버는 북미 1위인 C2C 플랫폼 포시마크 인수 이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쇼핑 등 기술력을 전수하고 있다. 포시마크는 인수 1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1분기 포시마크 광고매출은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었고, 북미 사업 집중을 통한 비용 효율화, 라이브스트리밍방송을 통한 이용자 유입 증가가 호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초엔 스페인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 최대주주가 됐다. 2021년 1억1500만 유로(약 1700억원)를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고 추가 투자를 통해 총 30.5%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포시마크의 흑자 지속 여부, 북미 시장 이외에서의 C2C 성과 등이 향후 관심사다.

이해진 GIO는 2019년 “네이버 20주년을 맞아 기업사에서 어떤 키워드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미국과 중국 회사들은 1000조 이상 거인이 많다. 제국주의란 표현을 쓰는데 그런 제국주의에 끝까지 저항했던 회사. 거인들이 전 세계 99%를 잠식했을 때 버티고 저항한 회사. ‘저항했다 쓰러졌다’가 아니라 ‘저항했다 살아남은 회사’였으면 좋겠다.”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이 그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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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권유진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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