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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과거 온통 수수께끼…35세 필리핀 여시장은 왜 ‘중국 스파이’로 몰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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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필리핀 작은 도시 밤반의 앨리스 궈(35) 시장이 중국 스파이 의혹에 휩싸였다. /궈 시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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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조용한 시골 마을 ‘밤반’이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 수도 마닐라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벼농사를 주로 짓는 작은 마을이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도 잘 찾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밤반을 떠들썩하게 만든 건 이곳의 시장 앨리스 궈다. 35살의 궈 시장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공공장소에서 분홍색 옷을 즐겨 입는 등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항상 큰 안경을 장착하고, 미소 띤 얼굴은 신뢰감을 줬다. 여기에 외국 억양 없는 현지 언어 타갈로그를 구사하는 모습에 ‘발로 뛰는 젊은 정치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런 그가 ‘중국 스파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필리핀의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19일(현지시각) 영국 BBC에 따르면, 이달 초 궈 시장이 필리핀 상원 청문회에 불려 오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과거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문제는 지난 3월 당국이 밤반에 있는 온라인 카지노 영업소를 단속하면서 시작됐다. 단속 결과 이곳은 사람 수백 명을 가둬놓고 이성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 사기 범행을 시키는 소굴로 밝혀졌다. 당국은 이곳에서 중국인 202명과 다른 외국인 73명을 포함해 감금된 약 700명을 구출했다.

현지에서 ‘포고’로 불리는 온라인 카지노 영업소는 주로 중국인 고객을 상대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번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긴장 관계가 형성됐고, ‘포고’ 역시 면밀한 조사를 받게 됐다.

이번에 적발된 밤반의 ‘포고’는 궈 시장 사무실 바로 뒤편에 있었다. 약 8헥타르(2만4200평)에 달하는 부지에는 식료품점, 창고, 수영장, 와인 저장고까지 갖추고 있었다. 직원들은 컴퓨터가 줄지어 놓인 테이블에서 사기 범행을 벌였다.

이 땅의 절반이 궈 시장의 소유로 밝혀졌다. 나머지 절반은 2년 전 그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팔았다고 한다. 궈 시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헬리콥터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땅과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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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궈 필리핀 밤반 시장. /밤반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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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궈 시장의 재산이 사실은 ‘중국의 자산’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궈 시장의 과거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는 그가 시장으로 당선되기 불과 1년 전인 2021년 밤반에서 유권자 등록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궈씨는 중국 혈통을 가진 필리핀인 사이에서도 흔한 성씨가 아니다. 궈 시장은 2022년 선거 연설에서 “어머니는 필리핀인이고, 아버지는 중국인”이라고 했다.

궈 시장은 상원 청문회에서 “내 출생증명서가 17세가 되어서야 등록됐다”고 주장했다.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돼지농장을 하던 자신의 집에서 홈스쿨링을 했는데, 교사 한 명의 이름만 언급했다.

청문회가 끝난 후 리사 온티베로스 의원은 “궈 시장의 답변이 불투명해서 너무 놀랐다”며 “궈 시장과 같은 미스터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필리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중국이 심어놓은 ‘자산’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다른 상원의원 역시 “궈 시장은 우리 질문에 ‘모른다’고만 대답하고, 자신이 어디에 살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까지 나섰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16일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기 위해 이민국과 함께 시민권에 대한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필리핀 내무지방행정부(DILG)는 시장 직무 정지를 권고했다. DILG는 지난 5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궈 시장을 조사한 결과 심각한 불법 행위가 발견됐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선관위와 법무부도 궈 시장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그는 공직에서 해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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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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