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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폐업 비용 더 달라" vs "돈 벌만큼 벌었다" 폐업주유소 염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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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 "주유소는 폐업하는 것도 어렵다. 위험물저장시설인 만큼 철거 규정이 까다롭고, 토양정화비용도 지불해야 해서다. 그래서 돈이 없어 폐업을 못하는 주유소가 숱하다.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주유소 업계가 10여년 전부터 이어온 주장이다.

# 한편에선 "철거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맞고, 현행법들에도 관련 규정이 있으니 합리적인 지원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익을 낼 땐 가만히 있더니 이제 와서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정부 정책과 폐업 지원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염치가 없다는 거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스쿠프가 폐업주유소 지원을 둘러싼 '염치 논쟁'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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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하지 못해 사실상 버려진 주유소들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미관을 해치는 건 물론, 폭발위험과 토양오염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휴ㆍ폐업 주유소가 가짜석유 판매처로 악용된 사례도 있다.

폐업주유소가 철거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주유소는 다른 자영업과 달리 폐업 비용이 많이 든다. 주유소 자체가 환경오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물저장시설인 만큼 철거 규정이 까다롭고, 토양정화를 위한 비용도 지불해야 해서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들은 "991.7㎡(약 300평) 기준 최소 1억5000만원 이상이 든다"고 말한다. 돈이 없어 폐업을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 쟁점➊ 폐업 지원론 = 그러자 업계 안팎에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계류 중이긴 하지만 2022년 국회에 주유소 폐업을 지원하는 법안도 발의됐다(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골자는 주유소 사업자가 폐업 혹은 친환경차 충전시설로 전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줄 근거를 마련하는 거다.

여기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우선 주유소 폐업은 정부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주유소는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내연기관차가 퇴출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는 게 전반적인 흐름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구입 시 보조금을 주는 것도,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등록을 막는 공약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연기관차가 친환경차로 바뀌면 주유소는 줄거나 업종을 바꿔야 한다. 이를 입증하듯 2018년 1만1750개였던 주유소는 올해 4월 1만962개로 6.7%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경쟁에 초점을 맞춘 주유소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과거 주유소의 생존을 담보하던 '거리제한' 규정은 1995년에 폐지했다. 2011년엔 정부 지원을 받은 알뜰주유소까지 등장했다.

특별시나 광역시에만 적용하던 알뜰주유소 거리제한 규정도 2022년에 폐지했다. 그 결과, 주유소 간 경쟁은 심해졌고, 퇴출 주유소는 늘었다. 폐업주유소를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유는 또 있다. 폐업주유소 관리가 공익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언급한 것처럼 주유소가 제대로 폐업하지 않으면 폭발이나 토양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범죄의 은신처로도 쓰일 수 있으니 예방을 위해서라도 지원을 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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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➋ 지원 신중론 = 하지만 정부의 폐업주유소 지원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무턱대고 지원에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는 건데, 여기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우선 기존 사업자들이 이익만 누리고 책임은 등한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주유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2009년 KB국민은행이 발간한 '소호업종리포트'에 따르면, 유류업종은 분석대상인 45개 소호업종(종업원이 1~10명인 업종) 중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가장 높았다. 그중 일부는 여러 개의 주유소를 거느리며 기업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장사가 안 된다고 폐업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애초에 주유소를 시작할 때 용도 폐지에 필요한 안전조치, 토양오염도검사, 토양정화 등의 의무를 함께 부여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정말 형편이 어려운 주유소 사업자라면 주유소 폐업 지원을 고려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그와 함께 얌체 사업자를 처벌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주유소 폐업이 늘어나는 게 정부 정책과 무관하진 않지만, 그게 정부에 폐업 지원을 요구할 근거가 되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식이면 정부 정책과 무관한 산업이 없으니 정부가 다른 모든 산업의 전업과 폐업을 책임져야 한다는 거나 다름없어서다.

주유소 사업자들이 폐업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자구 노력을 강구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주유소 업계는 주유소의 안정적인 전업과 폐업을 유도하기 위해 주유소 공제조합 설립을 추진했다. 2014년 2월엔 주유소 공제조합을 설립할 근거 규정을 담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골자는 주유소들이 보험처럼 일정액을 분담하면 그 돈으로 주유소 전ㆍ폐업을 지원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조합 설립은 지지부진했다. 주유소들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법 통과 후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열고, 설립 인가 신청도 진행했지만 결국 무산됐다"면서 "어쩌면 주유소 업계가 그때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폐업 주유소의 지원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근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업계 간 형평성을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전업과 폐업을 지원하는 규정이 없는 게 아니다. 주유소 사업자는 다른 소상공인과 마찬가지로 소상공인기본법과 소상공인법(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일부 위험물저장시설 철거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석유사업법에는 주유소 공제조합 구성 시 정부가 일부 금액, 토양환경보전법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토양정화를 위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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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쟁점은 지원 규모다. 업계에선 주유소 폐업은 워낙 비용이 많이 드니까 지원 규모가 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부의 의견은 다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주유소 업계는 사실상 폐업 비용 수억원 중 수천만원을 지원해달라는 건데, 이게 과연 형평에 맞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주유소 폐업 지원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주유소 사업을 통해 큰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닌 데다 정말 폐업 비용조차 없다면 공익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지원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려할 사안들은 적지 않다. 업계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외면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지원'도 문제다. 폐업주유소 지원 문제 역시 공론화가 먼저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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