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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서류 조작에 직인 위조까지…믿었던 마을 이장들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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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입구에서 직원들이 오가는 모습.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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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원 대의 국가 보조금을 불법으로 타낸 전·현직 마을 이장과 어촌계장 등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수사를 받게 됐다. 보조금 비리가 최말단 행정구역인 지방 군과 리까지 뿌리 깊게 퍼져있었던 것이다. 마을과 어촌을 대표했다는 이들은 범행 과정에서 직인을 위조하거나 허위 서류를 만드는 대범함도 보였다. 감사원 관계자는 “노년층 주민이 많아 감시가 어려운 보조금 사각지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고 말했다. 감사원 내에선 “고령화의 그늘이 초래한 현상”이란 말도 나왔다.

감사원이 21일 공개한 ‘공직비리 직무감찰’ 주요 감사결과에 따르면 부산광역시 영도구 A어촌계 어촌계장 B씨는 2016년 자신이 대표인 조합법인을 만들어 관내 공유지를 저렴하게 사들인 뒤 2020년에 되팔아 조합원들과 12억 9000만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해당 공유지는 지역 항구 매립에 따른 보상으로 A어촌계가 매입해야 했지만 몰래 챙긴 것이다. B씨는 자신의 법인을 A어촌계와 이름이 유사한 ‘A어촌계 영어조합법인’으로 만드는 치밀함도 보였다. B씨는 공유지를 매입한 뒤 국가 보조금을 받아 수산물 직매장을 건립하고, 보조금을 반환한 뒤 해당 건물과 토지를 되팔았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영도구 보조금 담당자들이 B씨와 불법 수의계약을 맺고, B씨가 부당하게 보조금을 받아간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정황도 적발했다.

남원시 C리의 전 이장 D씨는 인근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사업에 따라 주민보상책으로 나온 농산물 가공공장 건립 보조금 1억 8700만원을 빼돌렸다. 농산물 공장은 마을 공용토지에 건립되고 마을 재산으로 관리돼야 했지만, D씨는 2017년 자신의 아내 및 아들과 함께 E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한 뒤 이 법인 명의로 토지를 매입했다. 이후 그 땅에 농산물 가공공장을 설립하는 보조사업을 신청했다. 법령상 보조금 교부가 불가했지만, 남원시 담당자의 승인으로 돈을 타내 공장을 지은 뒤 E영농조합법인으로 공장의 소유권 등기까지 마치며 보조금을 착복했다.

경기 화성시의 F리 전 노인회장 겸 수리계장은 지역 새마을회 직인을 위조하고, 허위 서류를 만드는 방식으로 개발제한구역의 용도를 변경해 수억 원대의 시세차익과 수천만 원대 임대료를 챙겼다. F리 전 노인회장 G씨는 2018년 지역의 개발제한구역에 F리 새마을회가 아영쟝을 하는 것처럼 새마을회 직인을 위조한 허위 서류를 꾸며 야영지 사업자로 선정됐다. 2021년에는 똑같은 수법으로 해당 토지의 용도를 마을회관과 마을공동구판으로 한 번 더 변경했다. 당시 화성시 담당자는 민원을 통해 G씨가 직인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건축 승인을 해줬고, G씨는 2022년 F리 새마을회 소유로 되어있던 마을회관과 마을 공동구판장 소유권을 허위 거래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와 딸로 이전해 4억원의 시세차익(공시지가 기준)을 올렸다.

G씨는 또한 수리계장도 겸임하며 2019년 지역 개발제한구역을 F리 수리계가 낚시업을 하는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낚시터업 허가를 받은 뒤, 제삼자에게 임대하며 매년 3000만원의 임대료를 받았다. 제주도의 I리 전 이장 J씨는 폐교 재산인 한 초등학교 건물을 지역주민 소득증대시설로 받은 뒤, 2018년 해당 초등학교에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지인 K에게 넘겼고, K는 I리에 매년 500만원만 지급하는 조건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총 34억 3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전·현직 이장과 어촌계장 및 지역 보조금 담당자 10명을 지난해 12월 업무상 배임과 사기 혐의 등으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고 밝혔다. 공무원들에 대해선 소속 군청 및 시청에 징계도 요구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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