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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LG 출신 초격차 후계자 돌아오다…삼성전자 반도체 수장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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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장으로 위촉됐다.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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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의 삼성’을 뚫고 ‘기술 고집’을 관철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 " 21일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새 수장에 오른 전영현(64) 부회장에 대한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삼성전자는 이날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을 DS 부문장에 위촉했다며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아래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밝혔다. 기존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은 2년 반 만에 직을 내려놓고 미래사업기획단장 겸 삼성종합기술원장을 맡게 됐다.

이번 인사는 사업부장 등 부문 내 후속 인사 없이 수장만 교체됐다. DS부문 임직원들도 당일 오전 공식 발표를 통해 소식을 접할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경 사장은 최근 회사의 위기 속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스스로 사임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LG 출신 ‘초격차의 후계자’ 돌아오다



전 부회장은 한양대 전자공학과와 KAIST 전자공학 석·박사 이후 1991년부터 LG반도체에서 D램 메모리를 개발하다가, 2000년 삼성전자로 옮겨와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장, 개발실장, 메모리사업부장 등을 거쳤다.

전 부회장이 메모리사업부장 겸 전략마케팅팀장을 맡았던 2014~2017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20나노(㎚·10억분의 1m), 18나노 D램 양산에 연달아 성공하며 SK하이닉스·마이크론 같은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2년가량 유지했다. 그는 권오현 부회장을 이을 ‘초격차의 후계자’로도 꼽혔으나, 2017년 권 부회장 사퇴 후 DS부문장은 김기남 사장이 이어받았다. 전 부회장은 삼성SDI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연달아 맡다가 지난해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7년 만에 삼성전자에 복귀했다. 이번에 DS부문장에 올라 삼성 반도체의 구원 투수로 등판하게 됐다.

전 부회장과 가깝게 일했던 삼성전자 전직 임원은 “일반적인 삼성 CEO와는 다른 스타일”이라며 “기술에 대한 집요함이 있다”라고 평했다. ‘순혈 삼성’ 인사들은 치밀한 관리를 중시하는 삼성 방식을 일찌감치 익히지만, LG반도체 출신인 전 부회장은 기술에 대해 확신이 서면 밀어부치는 실행력이 돋보인다는 것.



‘배터리 해결사’가 ‘메모리 해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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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삼성SDI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전영현 당시 대표가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S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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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회장의 구원 등판은 두 번째다. 삼성SDI가 갤럭시노트7 배터리 화재 사고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던 2017년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해, 품질을 개선할 뿐 아니라 주력 사업을 스마트폰용 중소형 배터리에서 전기차·대형저장장치(ESS) 등으로 전환했다. 그가 대표를 맡은 5년 사이 삼성SDI 매출은 5조원 대에서 13조원 대로 2배 이상 늘었고 1조원 영업 적자에서 1조원 흑자로 돌아섰다. 전직 삼성SDI 임원은 “현장에서 발생한 기술적 문제의 본질을 계속되는 질문으로 파고 들어오는 CEO였다”라고 말했다.



메모리·로직 경계 사라진 ‘이종 시장’ 넘고 직원 다독여야



마운드에 선 그의 어깨는 무겁다. 그간 메모리 업황은 반도체 시장 사이클에 따라 출렁였으나,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각광받고 있다. 메모리가 범용 제품을 넘어 맞춤형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메모리 세계 1위이면서도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용 HBM을 납품하지 못 하면서 AI 반도체 열기에 소외돼 있다. 경계현 사장은 “AI 초기 시장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나, 2라운드는 승리해야 한다”라고 했으나 2라운드의 키는 전 부회장이 잡게 됐다.

일각에서는 전 부회장의 복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그가 반도체 업계를 떠난 지난 7년간 시장은 AI용 메모리와 HBM 경쟁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여 왔고,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TSMC가 메모리 업체 SK하이닉스와 차세대 HBM을 함께 개발하는 등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밤새워 일해 메모리 기술 격차를 유지하던 때와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거나 “D램 전문가인 전 부회장이 메모리 기술을 넘어 AI 시장의 큰 판도를 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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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에서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창사 이래 첫 단체 행동으로 문화 행사를 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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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부문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신망을 얻는 것도 과제다. 지난해 반도체 영업적자를 내자 DS부문은 성과급을 지급받지 못했고, 노사의 임금 협상은 결렬됐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달 화성 사업장에서 창사 이래 첫 단체행동으로 집회를 열었고, DS부문을 중심으로 2000여 명이 모여 처우 개선과 투명한 성과 평가 등을 요구했다. 오는 24일에는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노동조합 집회가 예정돼 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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