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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칩 설계 밀리고, 파운드리는 부진...'1등 메모리'까지 흔들린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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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사기가 펄럭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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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장 전격 교체 배경엔 연말 정기인사까지 기다리기 힘들 만큼 엄혹한 시장 상황이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위탁생산)·메모리 생산까지 포괄하는 세계 최대의 종합반도체회사(IDM)로 성장했지만, 최근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기술 흐름이 빠르게 변하면서 현재의 복잡하고 무거운 사업 구조가 부담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략 잃고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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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직원 등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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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사는 삼성의 여러 반도체 사업들이 경쟁사에 각개격파 당하며 수세에 몰리자, 쇄신의 칼을 빼든 것으로 풀이된다. 새로운 수장을 맞이한 삼성 반도체 사업부문은 분위기 전환은 물론 구조적 위기에서도 벗어나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당장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래전략실 해체(2017년) 이후 삼성전자가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 대한 치밀한 전략과 조직 통제를 잘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급기야 지난해 말 반도체부문 기획팀장(부사장)이 내부 의견대립 끝에 장기간 무단결근하며 업무가 마비되는 일도 있었다.

회사의 중장기·신사업 전략을 짜야할 핵심 임원의 무책임한 항명에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한동안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인수·합병(M&A) 등 꼭 필요한 작업이 늦어졌다”면서 “전략과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변방으로 밀려난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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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S22 시리즈에 병행 탑재됐던 삼성전자 엑시노스2200과 퀄컴 스냅드래곤8 Gen1. 사진 삼성전자·퀄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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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핵심 칩을 개발하는 엔비디아·AMD·퀄컴·인텔 등이 새로운 설계를 시도하며 AI 시장 수요를 흡수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이 분야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시스템LSI사업부가 자체 설계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는 현재 미국 애플·퀄컴, 대만 미디어텍 등에 밀려 점유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반면 칩셋 설계 분야에서 경쟁사로 꼽히던 퀄컴은 21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AI PC용 프로세서 시장까지 진출하며 격차를 벌렸다. 삼성은 2019년 자체 CPU 개발팀을 해체해버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 핵심 칩 설계 시장에서 삼성은 변방으로 밀려났다”라고 평가했다.



TSMC에 압도당한 파운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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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삼성전자가 막대한 투자를 쏟아 부었던 파운드리 사업의 경우 2022년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양산에 성공했지만, 시장은 대만 TSMC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업체 시장 점유율은 TSMC 61.2%, 삼성전자 11.3%였다. 두 기업 사이 점유율 격차는 지난해 3분기 45.5%포인트에서 49.9%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TSMC는 AI 칩 제조에 필요한 최첨단 공정에 대한 빅테크 기업들의 주문을 싹쓸이하고 있다. 3나노 이하 첨단 공정에서 TSMC의 점유율은 100%에 가까워 삼성이 낄 틈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TSMC는 최근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 공정까지 넘보며 삼성의 안방을 노리고 있다. 여기에 반도체 업계 ‘원조 강자’ 인텔마저 올해 본격적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며 삼성의 2위 자리를 위협하는 중이다.



1등 메모리마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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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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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삼성이 지난 30년동안 수율과 물량, 기술력에서 압도적 선두를 지킨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흔들린 게 이번 인사의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HBM·DDR5 등 주요 D램 응용 분야에서 주도권을 내주며 올 1분기 영업이익(1조9100억원)에서 SK하이닉스(2조8800억원)에도 밀리는 성적표를 받았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부가가치 메모리 HBM에서 밀린 게 치명적이었다.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발 수주가 지체되며 SK하이닉스에 HBM 선두 자리를 내줬다. 삼성전자가 2019년 HBM 연구개발 전담팀을 해체하는 등 AI 중심의 시장 판도를 내다보지못한 게 뼈아픈 결과로 돌아온 셈이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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