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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아레오파고스 권력 농단’이 부른 아테네 사법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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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제도는 소수 특권층의 담합 관행을 무너뜨리고 시민주권을 사법 영역으로까지 확대한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점이었다. 아테네 사법 민주화 역사가 보여주는 대로 소수가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와 관행은 국민의 저항에 부닥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법치라는 공화국의 정신은 법 위에서 법을 사유화하는 특권층을 용납하지 않는다.





한겨레

법정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소크라테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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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는 ‘공화국’의 붕괴를 막으려고 분투하다가 정적 안토니우스가 보낸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병사들은 키케로의 목과 함께 두 손도 잘랐는데, 그 손으로 쓴 글들이 키케로의 무기였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나 카이사르처럼 군대를 부려 싸운 사람이 아니라 언어를 부려 싸운 사람이었다. 그 키케로가 쓴 글들 가운데 공화주의 이념을 가장 잘 옹호한 저작으로 꼽히는 것이 ‘국가론’이다. 이 책에서 키케로는 공화국을 이렇게 정의한다.



“공화국이란 인민의 것이다. 인민이란 법에 대한 동의와 이익의 공유를 통해 결속한 대중의 집단이다.”



공화국은 정의상 ‘인민 전체의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소유가 아니라 인민 전체의 소유일 때만 그 나라는 공화국이라고 불린다. 인민이 공화국이다. 키케로는 그 공화국의 존재 요건으로 ‘이익의 공유’를 든다. 나라의 이익을 인민 전체가 공유해야만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키케로가 공화국의 조건으로 더 강조하는 것이 ‘법에 대한 동의’다. 법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 법의 테두리 안에 모였을 때 인민이 된다. 키케로가 생각하는 법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세워 올리는 것이다. 대중이 모여 대중 자신을 다스리는 보편적 규약을 함께 만듦으로써 법이 탄생한다. 법의 탄생이 인민의 탄생이고 공화국의 탄생이다. 인민이 자신들이 만든 법의 우산 아래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가 공화국이다.



키케로 정치사상의 연원을 찾아 올라가면 플라톤 사상에까지 가 닿는다. 키케로가 ‘국가론’을 쓴 것부터가 플라톤의 ‘국가’를 흉내 낸 것이다. 키케로는 플라톤을 모방하면서 변형했다. 플라톤의 글 가운데 ‘법에 대한 동의’라는 키케로 생각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글이 초기 대화편 ‘크리톤’이다. ‘크리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던 소크라테스가 감옥으로 찾아온 친구 크리톤과 나눈 대화를 중계하는 책이다.



죽마고우 크리톤은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온갖 논리를 동원해 친구에게 탈옥을 권한다. ‘어차피 정치적 재판으로 받은 사형 선고니 국외로 망명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친구를 몰래 빼돌렸다고 처벌받지 않을까 염려한다면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진짜 친구라면 그보다 더한 위험이라도 감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친구의 거듭된 설득을 물리치고 ‘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지’ 역으로 설득한다. 이때 소크라테스가 끌어들이는 것이 ‘아테네 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을 의인화해 그 법이 하는 말을 전하는데, 그 핵심이 ‘법에 대한 동의’다. 아테네 법이 소크라테스에게 말한다.



“소크라테스! 그대는 남들처럼 국외여행을 한 적도 없고 다른 나라와 다른 나라 법률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대는 그토록 단호히 우리를 택했고, 시민으로서 모든 활동에서 우리를 준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대는 또 이 나라에서 자식들을 낳았는데, 이것은 이 나라가 그대의 마음에 들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구나 그대는 재판을 받을 때도 그대가 원했다면 추방형을 제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대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호언하며 추방형이 아니라 사형을 택했다.”



아테네 법은 거듭 추궁한다. ‘그렇게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이제 와 국외로 탈출한다면 그것은 아테네 법과 애초에 한 합의를 어기는 것이자 70년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아테네 법이 하는 모든 말은 소크라테스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아테네 법에 따라 살겠다고 동의해놓고 그 약속을 팽개치고 살길을 찾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신념이다.



재판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고소인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시민들에게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캐묻다가 화를 불렀다고 변론했다. 재판 과정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살아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내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와 배심원들에게 읍소함으로써 동정을 살 수도 있었고, 고소인들이 바랐던 대로 ‘국외 추방’ 형량을 선택함으로써 사형이라는 극단적 형벌을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판정의 소크라테스는 이 모든 길을 스스로 봉쇄했다. 소크라테스는 판결을 받고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아마 내가 여러분을 설득할 만한 말이 부족해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나는 변론할 때도 ‘위험에 처했다고 해서 자유인답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변론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변론해 목숨을 구하느니 이렇게 변론하다 죽는 쪽을 택합니다.”



분명한 건 법정에서 변론하는 소크라테스든 감옥에서 친구를 설득하는 소크라테스든 아테네 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배심원 재판 절차와 그 절차를 뒷받침하는 아테네 법을 문제 삼지 않는다. ‘악법’이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이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법제사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안긴 그 법이 악법이기는커녕 아테네 민주주의가 이룬 커다란 성취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려준다.



소크라테스 시대 이전에 아테네에서 중대 형사재판을 담당한 곳은 아레오파고스 평의회였다. 아레오파고스 평의회는 전직 아르콘(최고행정관)들로 구성된 일종의 원로원이었다. 아테네는 해마다 아르콘을 10명씩 추첨으로 뽑았고, 임기가 끝난 아르콘들은 자동으로 아레오파고스 평의회 의원이 됐다. 이 평의회에서 현직 아르콘의 탄핵을 비롯한 중대 범죄를 재판했다. 그런데 평의회 의원들 다수가 현직 아르콘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그러다 보니 사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려 아르콘의 비리를 덮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테네 민중은 재판의 공정성이 무너지는 데 분노해 사법제도의 혁신을 요구했다. 그 결과가 기원전 461년 에피알테스가 주도한 사법개혁이다. 이 개혁으로 시민이 직접 재판을 진행하는 배심원제도가 등장했다. 아레오파고스 평의회의 사법권 대부분이 이때 배심원 재판소로 넘어갔고 사법권 일부는 민회가 관장했다.



사법개혁으로 도입된 배심원단은 해마다 30살 이상 아테네 시민 지원자 가운데 무작위로 뽑은 6000명으로 구성됐다. 이 배심원단에서 사소한 재판은 200명, 중대한 재판은 500명을 다시 추첨으로 뽑아 해당 재판의 배심원을 꾸렸다. 이 배심원 재판에는 판사도 검사도 따로 없었다. 배심원으로 뽑힌 보통 시민이 재판관이 돼 재판 전체를 이끌고 판결을 내렸다. 고소인이 피고인의 죄를 논고하면, 피고인이 나와 자신을 변론했다. 이때 피고인은 스스로 변론문을 써오기도 했지만, 직업적인 연설문 작성자가 써준 것을 읽는 일도 많았다. 그리하여 기원전 5세기 사법개혁과 함께 법정 연설문을 대필하는 수사학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테네 수사학은 사법 민주화가 피워낸 꽃이었다. 이 수사학의 허점을 캐물음으로써 아테네 공공언어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야말로 참된 정치인이라고 자부했다.



아테네 배심원제도는 도입 이후 여러 차례 보완 과정을 거쳤다. 기원전 450년대에는 공적 임무를 맡은 사람들에게 수당을 주는 법률이 제정됐다. 수당 지급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또 기원전 4세기 초에는 배심원 추첨 절차를 바꾸어 재판 당일 아침에 배심원을 뽑도록 했다. 뇌물이 끼어들 여지를 없앰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려는 조처였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도입되고 강화된 배심원제도 아래서 재판을 받았다. 그러므로 ‘악법’을 보려면 배심원제도가 들어서기 전 아레오파고스 평의회로 눈을 돌려야 한다. 배심원제도는 소수 특권층이 서로서로 봐주는 담합 관행을 무너뜨리고 시민주권을 사법 영역 전반으로 확대한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점이었다.



아테네 사법 민주화 역사가 보여주는 대로 소수가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와 관행은 국민의 저항에 부닥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법치라는 공화국의 정신은 법 위에서 법을 사유화하는 특권층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방종한 특권 세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 검찰 권력이다. 아테네 시민의 주권적 명령으로 사법권을 박탈당한 아레오파고스의 사례는 이 나라 검찰 권력의 미래를 예고한다.



한겨레

고명섭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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