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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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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종섭, 채상병 사건 구체적 지휘권 없다”…인권위서 ‘위법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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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가운데)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 군사법원에서 열리는 4차 공판 출석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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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 및 각 군 총장 등에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수사개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군사법원법의 개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시대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며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담보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원민경 위원(비상임, 법무법인 원 변호사)이 채 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의 피해구제를 위해 군인권센터가 낸 진정사건을 논의한 지난 1월30일 군인권보호위원회(군인권소위)에서 밝힌 의견이다. 원 위원은 당시 군인권센터의 진정에 20여쪽에 이르는 의견서를 내 인용의견을 밝혔으나 소위원장인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겸 상임위원과 한석훈 위원이 기각 의견을 밝히면서 기각 처리됐다. 진정인에 대한 기각 통지과정에서도 이러한 인용의견의 내용은 공개된 적이 없다.



당일 소위가 끝난 직후 원민경 위원은 “의결 절차가 위법하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인권위법 제13조2항은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르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만장일치가 되지 않을 경우 11명 위원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에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김용원 위원은 “소위에서 3명의 위원 중 1명만 반대해도 해당 진정이 자동기각된다”는 본인의 해석에 따라 독단적으로 이 안건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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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2일 인권위 전원회의장에 입장하는 원민경 위원.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당일 소위의 쟁점은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가 성립하느냐였다. 항명 요건을 갖추려면 박 대령에 대한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감독권이 적법한지부터 따져야 한다. 원민경 위원은 “적법하지 않다”고 본 반면 김용원·한석훈 위원은 “적법하다”고 보았다.



한겨레가 입수한 의견서에서 원 위원은 “군사경찰직무법상 각 군 참모총장(해병대의 경우 해병대 사령관)에게 소관 군사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한이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가 아닌 수사부대에 대한 일반적인 지휘나 예외적으로 수사기관의 수사지휘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를 담보하는 보완책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조직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경찰의 구체적 사건 수사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고 했다.



가령 법령 문헌상의 해석 만으로만 보면 수사권 역시 헌법상 행정권의 한 부분이므로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수사지휘의 가능성은 있다고 원 위원은 밝혔다. 이때의 지휘권한 발동이라는 것은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수사본부장에게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수사를 할 것을 지시했다”, “범인 검거에 총력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와 같이 매우 일반적이고 추상적, 선언적 혹은 주의적 차원의 메시지를 표명하는 정도의 포괄적인 지휘·감독권의 발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무관리관이 예하 군사경찰 부대의 장에게 개별사건에 대해 수회에 걸쳐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요구한 상황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고, 특히 그 언급이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사건 피해자에게는 외압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채 상병 순직 사건 직후에 해병대 수사단장과 해병대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하여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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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위원들이 개회 전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한별, 한석훈, 김용원, 남규선 위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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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24일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폐쇄적인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성폭력범죄, 군인 등의 사망사건의 원인이 되는 범죄 및 군인 등이 그 신분을 취득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를 군사법원의 재판권에서 제외했고, 군 장병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군사재판 항소심을 서울고등법원으로 이관토록 했다. 또한 종전에는 장성급 장교가 지휘하는 부대에 보통검찰부를 설치하였으나 국방부 장관 및 각 군 참모총장 소속으로 검찰단을 두는 것으로 변경하는 한편, 군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방부 장관 및 각 군 참모총장은 군검사를 일반적으로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는 소속 검찰단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원 위원은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각 군의 장성급 부대의 지휘구조에서 탈피하여 국방부 장관 및 각 군 총장으로 군 검찰과 군사경찰 조직을 개편함으로써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한 것인데, 기존 장성급 지휘관의 수사·기소 등에 대한 구체적 관여를 상급 지휘자인 장관 및 각 군 총장으로 단순 변경시키는 것으로 해당 규정을 해석한다면,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입법 취지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해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 장관, 각 군 참모총장 등이 행사하는 군사경찰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감독은 군사경찰부대 수사부서(대)의 장에게 위임되어 행사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원 위원은 “이를 넘어 장관, 참모총장 등이 위임된 구체적 사건 지휘권을 개별적으로 행사하고자 한다면 규정의 예외적 사항으로 판단될 만한 충분한 사유와 그 사유 존재의 정당성이 소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권위 군인권소위는 지난해 8월29일 박정훈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안건을 만장일치 의견으로 기각한 바 있다. 원민경 위원에 따르면, 이후 국방부 검찰단이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군인권소위 재소집을 요구하자 김용원 위원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군인권소위에서 추가로 군인권센터의 진정 건을 논의했는데, 올해 1월에야 결정이 난 것이다. 이에 앞서 군인권센터는 김용원 위원에 대한 기피신청을 인권위에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 위원은 지난 4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군인권보호관으로서 김용원 위원이 “(국방부 장관과 통화를 한 8월14일 이후)개최된 군인권소위에서 박정훈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또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거나 설득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고 불신과 의혹의 양산지가 돼버린 김용원 위원은 더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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