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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반도체 위기감에… 초격차 기술 주역 전격 등판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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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새 부문장 전영현으로 교체

압도적 업계 우위 위협받자 ‘각성’

부회장급 격상해 원포인트 인사

TSMC와 파운드리 격차 벌어지고

HBM은 SK하이닉스에 1위 뺏겨

5분기 만에 적자 탈출한 DS부문도

경쟁력 강화 등 돌파구 시급 판단

‘용퇴’ 경계현 사장은 임무 교대

미래사업단장 임명… 신사업 투입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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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21일 반도체 사업 수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사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한 배경의 핵심엔 ‘조직의 각성’이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전례 없는 반도체 ‘혹한기’를 겪은 뒤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실적 ‘업턴’(상승 국면)을 시작했다. 이런 때 임직원을 포함한 조직 전체에 경쟁사를 초격차 기술력으로 압도했던 옛 영광을 되찾아야만 한다는 특단의 각오를 새겨야 한다는 각성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전설’ 격인 전 부회장을 새 리더십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미래사업기획단장인 전 부회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에, 미래사업기획단장에 기존 DS부문장인 경 사장을 위촉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재계 안팎에선 삼성전자가 전 부회장을 반도체 사업 ‘구원투수’로 기용한 것은 경쟁력 회복을 위한 ‘묘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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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 매출 1위를 뺏기고 SK하이닉스엔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내주는 등 DS부문 임직원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을 성공의 DNA로 걷어낼 최상의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전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불린다. LG반도체 출신인 그는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한 뒤 2014년부터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2016년 업계 최초 1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급 D램 양산에 돌입하는 등 전 부회장 체제하 초격차 기술력을 꽃피웠다. 2012년 4조원대로 떨어진 DS부문 영업이익은 13조원대로 회복됐다.

전 부회장은 2017년 삼성SDI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엔 ‘소방수’ 투입이라 불렸다. 삼성SDI는 2016년 하반기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전 부회장 부임 첫해 삼성SDI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5년간 에너지저장장치(ESS), 자동차 등 중대형 배터리로 사업 다각화를 이뤄냈다.

삼성전자는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라며 “그간 축적된 풍부한 경영노하우를 바탕으로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 부회장의 무게감도 조직 분위기 쇄신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DS부문 수장의 직급이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격상돼서다. 전 부회장은 삼성SDI 배터리 사업 성공을 인정받아 2022년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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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현 용퇴 결단… 위기감의 발로

재계에선 이번 인사가 말 그대로 ‘긴급 투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 부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래사업기획단장에 임명되며 삼성 그룹의 백년대계가 될 신사업 발굴 미션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반년 만에 DS부문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를 찾는 과제를 반년 만에 마쳤다고 보긴 힘들다”며 “DS부문의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올 것이 왔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1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냈던 DS부문은 올해 1분기 2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리며 다섯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직 안팎에선 반도체 기술 초격차를 달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삼성전자 일부 부서에서만 시행됐던 임원의 주 6일 근무체제가 최근 확대된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경 사장이 스스로 부문장에서 물러난 것도 최근 반도체 위기 상황을 타파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용퇴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경 사장은 올해 초 주주총회와 사내 간담회에서 ‘반도체 세계 1위 탈환’, ‘AI 시장 2라운드 승리’를 공언하며 자신을 채찍질해 왔다.

2020년부터 삼성전기 대표이사를 맡아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린 경 사장은 2022년부터 삼성전자 DS부문장을 맡아 반도체 사업을 총괄해 왔다.

삼성전자는 “경 사장은 삼성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임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서)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전에 맡고 있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도 그대로 경 사장이 맡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장 교체에 이어 사업부장 등 후속 인사는 검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추후 반도체 위기 극복 방안 및 미래 전략을 성안해 나가는 과정에서 후속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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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리더십 탈환 이뤄내야

삼성전자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전 부회장의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신임 DS부문장으로서 전 부회장에게 주어진 미션은 간단치 않다.

우선 차세대 반도체 주도권 탈환이 꼽힌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지배 중인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인 HBM3E 공급을 시작해 SK하이닉스의 HBM 독점 공급 상황을 탈피하는 게 급선무다. 앞서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개발한 HBM3E 12단 제품을 올해 2분기에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연말부터 양산에 돌입할 새로운 대규모언어모델(LLM)용 AI 칩 ‘마하-1’의 성공적인 데뷔도 중요하다. 마하-1은 기존 AI 칩 대비 메모리 처리량을 8분의 1로 줄이고 전력효율을 8배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력효율이 높아져 향후 HBM 없이도 저전력 상태에서 LLM 추론이 가능해진다면 AI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의 약진도 필요하다. 절대 강자인 대만의 TSMC와 좀처럼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11.3%로, TSMC(61.2%)와의 점유율 격차는 직전 분기 45.5%포인트에서 49.9%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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