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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강준만의 화이부동]한동훈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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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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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26일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2024년 1월8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된 김경율은 KBS와 SBS 라디오에 연이어 출연해 “3·4선 의원도 알고 있고, 대통령실도 알고 있고, 전직 장관도 알고 있음에도 여섯 글자(김건희 리스크)를 지금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윤석열 정권이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의 핵심을 건드렸다. 그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70% 찬성 여론이 결국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그 자체라기보다는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다”며 “그렇다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납득할 만한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이즈음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1월11일 김건희 팬클럽인 ‘건승코리아’(구 건사랑) 운영진은 중앙당에 한동훈 팬카페인 ‘위드후니’의 김건희 비방 및 김건희 특검법 찬성 활동 등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다. 전날 위드후니 운영진은 건승코리아 운영진과의 온라인 채팅 대화에서 “한 위원장이 모든 주도권을 잡아 와야 윤석열 정부도 살아남는다”며 “지금은 이기는 것만 생각할 때이지 그 수단과 방법을 택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월17일 김경율은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서 김건희의 명품백 사건과 관련해 “(역사학 교수가)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등이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하더라”며 “지금 이 사건도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1월18일 한동훈은 기자들이 김건희의 명품백 사건에 대해 질문하자 “함정 몰카”라면서도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에 대한 검토 문제를 전향적으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언론은 한동훈이 ‘국민 걱정’ ‘아쉬운 점’을 처음 언급한 것에 주목했다.

사흘 후인 1월21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대통령비서실장 이관섭이 한동훈을 직접 만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한동훈이 그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뉴스였다. 이 충돌의 원인은 ‘김건희 명품백 논란’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로써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김건희 리스크’와 관련된 윤석열과의 사전 합의는 없었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동훈이 그 문제에 대한 윤석열의 ‘양보’를 얻어내는 걸 조건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는 게 상식 아닌가?

생각해보자. 김건희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지 않고선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윤석열은 김건희가 무슨 일을 하건 김건희 보호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는 2월7일 ‘대통령 특별대담’에서 김건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박절하게 대하기 어렵다’ ‘매정하게 끊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있다’는 수준의 인식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따라서 위기에 빠진 정권과 당을 구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비대위원장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갖고 있었어야 했다. 오랜 친분과 신뢰 관계를 밑천으로 자신이 간곡히 설득하거나 호소하면 윤석열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 정도는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동훈에겐 그게 없었다. 한동훈은 왜 그랬을까? 왜 아무런 자신감도 비전도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자신이 책임지고 해보겠다고 나섰느냐 이 말이다.

왜 망할 프로젝트 맡았을까

한동훈은 윤석열의 김건희에 대한 집착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비상한 상황의 압력이 가져다줄 수 있는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기대는 어긋났다. 김건희 문제에서 사실상 패배한 셈이었으니 다른 문제들은 볼 것도 없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우세 분위기를 바꾼 건 윤석열이 전 국방부 장관 이종섭을 호주대사에 임명한 사건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황상무의 ‘회칼 테러’ 발언 사건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동훈이 이종섭의 ‘즉각 귀국’과 황상무의 ‘스스로 거취 결정’을 요구한 건 3월17일이었다. 외교부가 호주대사 임명 건을 발표하자마자 논란이 된 게 3월4일이었는데, 13일이나 걸린 것이다(황상무 논란이 일어나고 알려진 건 3월14일이었다). 윤석열의 결정도 질질 끌어 3일이나 걸린 3월20일에서야 이종섭의 ‘곧 귀국’과 황상무의 ‘즉각 사퇴’가 발표되었다.

4월1일 윤석열의 ‘의대 증원’ 대국민 담화는 대통령실, 아니 윤 정권이 윤석열이라는 1인 두뇌와 충동에 의존하는 1인 체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증폭시켰다. 아니 저걸 왜 했지? 왜 메시지를 저런 식으로 내놓지? 선거에서 어떻게 해야 표를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실험이었다면 모를까, 현실 세계에선 믿기 어려운 자해극이었다.

결국 4·10 총선은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다.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은 4월19일자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참패의 원인은 99% 대통령이 제공했다. (…) 물론 윤 대통령 이외에도 패배 원인은 100가지도 넘게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백개를 다 합쳐도 총량에서 전체 원인의 1%가 안 된다.” 사실 12석을 얻은 조국혁신당의 기이한 성공이야말로 이 총선이 ‘윤석열 심판 선거’였다는 걸 말해준 게 아니고 무엇이랴. 심판은 정책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윤석열의 태도와 스타일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래서 책임은 오롯이 윤석열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기홍은 위 칼럼에서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의 원인이 한동훈 대표와 당의 잘못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후 벌어진 일들을 보면 윤석열은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그가 속된 말로 ‘안면몰수’ 전략의 일환으로 그런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문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을 경우다. 그건 윤석열이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한동훈의 ‘이·조 심판론’ ‘운동권 심판론’은 실패작이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법 높은데, 이는 맞는 말일지언정 논점을 일탈한 지적이다. 전체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의 핵심은 김건희 리스크를 비롯한 주요 문제에 대한 윤석열의 내로남불과 불통이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윤석열 심판’을 외치는 야당들에 맞설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윤석열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윤석열은 스스로 그 근거를 끊임없이 키워가는 딴 세상 사람의 모습만 보였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지금 바꿔 보려는 게 낫지 않을까

‘이·조 심판론’을 비롯한 한동훈의 선거 전략은 모든 문제의 원인인 윤석열을 내쫓을 수는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건 살아보려는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그런 몸부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난센스다. 한동훈의 죄라면, 올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윤석열과의 충돌 시도는 했었을망정 ‘치킨게임’도 불사하는 정면충돌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정면충돌을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단지 파국일 뿐이라면? 그렇다면 한동훈은 무죄이며, 문제는 다시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동훈은 왜 그랬을까? 왜 아무런 자신감도 비전도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자신이 책임지고 해보겠다고 나섰느냐 이 말이다.

전 대통령 문재인은 <문재인의 운명>에서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썼다. 운명의 성격과 모습은 다르지만, 한동훈은 윤석열이 남긴 숙제(저지른 과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정치판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윤석열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윤석열의 정치행태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나중에 윤석열에게 가해질 게 분명한 정치보복을 그의 측근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당해야 하나? 벌써부터 ‘한동훈 특검’을 외쳐대는 저 특검중독자들에게 당하느니 지금 뭐라도 바꿔 보려고 몸부림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한동훈이 왜 그랬는지 영 이해가 되지를 않아 해본 생각이다.

경향신문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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