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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단독] "이자·배당 늘어도 절반이 세금"… 부자 도약대 걷어차인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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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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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A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5억원을 정기예금에 넣으려 했다가 금융소득종합과세(금소세)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은행에 상담을 요청했다. A씨는 기존에 여유자금 5억원을 정기예금으로 운용 중이었는데, 상속받은 5억원까지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세전 연간 이자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 종합소득세(종소세) 납부 의무가 생긴다.

여당은 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금소세 대상 기준을 연 2000만원 초과에서 4000만원 초과로 올리려고 한다. 중산층과 상류층의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만큼,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가는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도록 발판을 대줘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현실에 맞지 않는 과도한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중산층의 예금과 주식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현행 소득세법상 금소세는 이자·배당을 비롯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산해 최대 49.5%(지방세 포함)인 고율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부(富)를 재분배한다는 목적에서 28년 전 시행에 들어갔지만 금융상품이 중산층 자산 형성의 중요한 도구가 된 현 상황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중산층과 서민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현 2000만원 기준은 상향 조정돼야 한다"면서 "기준금액을 올리면 주식 투자가 더욱 활발해져 기업의 자금 조달이 보다 원활해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만식 이현세무법인 대표도 "금소세가 도입된 것이 약 30년 전이기 때문에 최근 자본시장 규모와 거래 상황을 감안해 2000만원인 과세 기준금액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4000만원 기준은 사실 금소세 첫 시행 때와 숫자는 동일하다. 다만 당시에는 개인이 아닌 부부 합산 금융소득이 기준이었다. 그러던 중 200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부부 합산제는 폐지됐고, 개인별 소득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이후 개인별 소득 4000만원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 따라 2013년 2000만원으로 기준이 낮아진 뒤 지금까지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고금리의 영향으로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는 이들이 크게 늘면서 기준금액을 다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금소세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2일 매일경제가 국세청 종합소득과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2년만 해도 3조6423억원에 불과했던 금소세 신고액은 2022년 25조5091억원으로 7배 급증했다. 과거와 달리 일반 서민들까지 활발히 금융상품과 주식에 투자하고 배당 수요가 늘어나며 국민의 이자·배당소득이 연평균 10.2%씩 늘어난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2년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은 336만명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1403만명으로 4배 이상 불어났다.

전반적인 국민 소득이 증가세라는 점도 금소세 개편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년 1만2261달러에 그쳤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만3128달러로 2.7배 늘어났다. 원화로 환산한 GDP는 이 기간 1386만원에서 4325만원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 2%대 중반 성장률이 예상되며 한동안 정체됐던 국민 소득은 재차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내년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7700달러를 기록한 후 2026년 4만500달러로 사상 처음 4만달러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1분기 평균 달러당 원화값으로 환산하면 내년부터 5000만원(5008만원)을 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향후 22대 국회에서 금소세 기준금액을 올리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 이는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될 전망이다.

거야(巨野)인 국회 지형에서 개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현실에 맞도록 세제를 개편한다는 취지에 더불어민주당이 공감할 경우 개정안은 예상보다 쉽게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고금리와 주식 투자 인구 증가세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금소세 기준금액 조정이 필요하다는 데 야당이 공감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과거 금소세 기준금액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춰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2018년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내용의 권고를 했다. 하지만 당시 1000만원 하향 조정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면서 권고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희조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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