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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김두규의 권력과 風水]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4월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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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풍수’라는 화두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결과 때문이다. 왜 윤석열 당선자는 취임도 전에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겼을까?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하루아침’에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윤 당선자가 ‘새로운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권력’도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 참패로 무너졌다. 레임덕이라고 혹평하는 정치가·언론도 있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2020)라는 책에서 전·현직 대통령들을 평해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총선에서 ‘조용한 승리’를 거두었다.

총선 이틀 전인 4월 8일 저녁, 김 위원장은 카톡으로 “이준석은 구해질 것 같음”이란 짧은 문자를 필자에게 보내주셨다. 그때까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당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4월 10일 저녁 6시, 투표가 끝나고 출구조사 때도 이준석 후보가 3%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김종인 위원장의 예측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예측대로 이준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주지하듯 조국·이준석·김종인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내친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총선의 실질적 승자가 되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았기에 윤 대통령이 반전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그는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청와대 터가 대통령 집무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의 결과물이었다. 윤 대통령이 집무실로 택한 지금의 용산 터(국방부 터)는 풍수상 어떤 곳일까? 터의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남산→하얏트 호텔→승지원→이태원 부군당→녹사평역→둔지산으로 이어진다. 둔지산 지맥은 둘로 나뉜다. 중심 맥은 국립중앙박물관 쪽으로 흘러간다. 이 중심 맥에 고건 당시 서울시장(1988~1990, 1998~2002 재임)은 서울시청청사를 짓고자 하였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 서울에서 가장 크고 깊은 이유이다.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옮겨가면 미래 서울시 ‘청사역’으로 쓰고자 했던 고건시장의 원모(遠謀)였다.

필자는 윤석열 당시 당선자가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다고 하였을 때 녹사평역 남쪽 부지, 즉 고건 당시 시장이 시청사 부지로 염두에 둔 곳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둔지산에서 작은 능선이 국방부 터로 이어진다. 100년 전, 이곳 능선에는 수많은 무덤들이 있었다. 일제시대 지적도에서 확인 가능하다.

매일경제

안충기 화가가 그린 ‘백악산 아래 청와대’


국방부 터가 일제 강점기까지 공동묘지 터였다면, 청와대 터는 풍수상 어떤 곳이었을까? 한때 “청와대 터가 흉지”라는 소문이 돌았다. 청와대 터가 풍수상 나쁘다는 소문의 기원은 언제였을까?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1년, 유명 소설가 이병주는 ‘대통령들의 초상’이란 책을 출간한다. 이병주는 이 책에서 ‘청와대와 대통령 운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청와대란 곳은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쫓겨나오든지 끌려 나오든지 지레 겁을 먹고 그만두고 나오든지 아니면 죽어서 나와야만 하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소설가의 예언대로 이후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했다. 비슷한 시기에 풍수학계 선배이자 필자의 의형(義兄)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2024년 1월 작고)는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언론에 발언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역대 대통령들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 뒤끝이 안 좋았다”고 했다.

과연 터의 탓일까? 조선왕조 정궁은 청와대 터와 경복궁 터를 아울렀던 곳이다. 태조·태종이 이곳에서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다. 세종은 한글 창제·백두산 영토 확장, 세조는 왕권 확립·문화 융성, 성종은 ‘경국대전’을 반포하였다. 조선의 전성기는 바로 이때였다. 해방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으면서 산업화에 성공하여 경제 대국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노태우 대통령 때는 올림픽을 치러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아 우리의 ‘국격’을 높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탄생시켰다. 근대화에서 민주화로 그리고 세계화로 우리나라는 진보해왔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대 대국, 군사 6대 강국, K-컬처는 세계 최고이다. 모두 청와대에서 집무했던 대통령들 시절에 이뤄진 업적이다.

그렇다면 왜 대통령들은 불행했을까? 김종인 위원장은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2022)에서 그 답을 밝힌다. 김 위원장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직접 접한 독특한 인물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정적관계였던 초대 대법원장이 그의 조부(김병로)였다. 조부와 한방을 쓰던 김 위원장은 이승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는 학자·관료·정치인으로서 직접 인연을 맺었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킹메이커였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미래 권력 이준석 당선자의 멘토이다.

대통령 비극에 대한 그의 결론이다. “막강한 권력을 갖는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 대통령제일지라도 의회중심주의로 권력을 분산해야 대통령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의 명승을 펜으로 그리는 안충기 화가가 2024년 3월 ‘한국미술재단 갤러리 카프’에서 ‘서울 산강(山江)’이란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의 명승을 재현한 진경산수화들이다. 그 가운데 백미는 ‘백악산 아래 청와대’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그림 참고). 안 화가 역시 청와대 흉지설을 들었기에 청와대 풍수를 꼼꼼히 살폈다. 청와대가 개방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청와대’(2022)라는 책을 출간할 정도로 전문가이다. 화가는 말한다. “백악산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터만큼 기운생동(氣韻生動)한 곳은 없다.”

궁금하다. 3년 후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다하면? 후임자는 용산에서 계속 집무할까? 제3의 장소로 옮길까? 풍수학자인 필자가 바라는 바는 청와대 터로 대통령 집무실이 복귀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곳은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이기 때문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풍수학자다. 현재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풍수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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