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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시시비비]기부, 미국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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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미국 뉴욕시 브롱크스에 위치한 한 의과대학 강당. 긴급회의에 참석해달라는 학교 측 요구에 재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모였다. 이내 단상에 오른 90대 여성이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가자 학생들은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눈물을 터뜨리며 서로 부둥켜안기도 했다. "올해 8월부터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수업료가 무료라는 것을 알리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대학의 전직 교수이자 이사회 의장인 고테스만(93) 여사가 던진 한마디였다. 그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에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 하나의 조건을 걸었다. 자신의 이름이 대학이나 장학기금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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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고테스만 여사의 수업료 면제 발표에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X' 캡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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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최근에는 미국 명문 다트머스대의 졸업식에서 졸업생 1000여 명에게 각각 1000달러(약 136만원)씩을 선물한 이도 있었다. 주인공은 미국 통신업체 그래닛 텔레커뮤니케니션즈(Granite Telecommunications)의 창업자인 로버트 헤일(57). 미국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 지분도 보유하고 있는 그의 순자산은 포브스지 추정 54억달러(약 7조3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4년 전부터 졸업생들에게 현금을 선물로 안기는 기부를 시작한 헤일은 특히 학생들이 1000달러 중 절반인 500달러(약 68만원)는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500달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도록 하고 있다. 1000달러의 절반이 기부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대다수의 사람이 옳은 일을 하고 그로 인해 기뻐한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은 GDP, 경제 발전, 기술 혁신 등의 지표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소득 격차와 부의 불균형이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기부 문화가 가장 잘 발달한 국가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Giving US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인들은 대략 5290억달러(약 723조원)를 기부했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은 656조원보다 많은 액수다.

빈부 격차, 인종과 민족적 불평등, 정치적 분열과 양극화 등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기부문화가 공동체를 유지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2023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세계기부지수에서 5위를 차지하며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38점으로 142개 조사대상국 중 79위를 기록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오늘날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에 맞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부를 이루는 과정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부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고 돈은 사회 복지를 위해 환원해야 한다"며 전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만이 아니라 일반인이 하는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다. Giving USA에 따르면 2022년 전체 기부액 중 일반인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64%에 이른다. 마약 남용과 총기 난사 등 각종 끔찍한 사건·사고들이 미국 전역을 시끄럽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기부를 하는 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진심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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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욱 국제부장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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