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김호중 ‘콘크리트 팬덤’ 뒷배 믿었나…비상식 행보 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음주 뺑소니 사고 수습 과정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일관한 사안을 두고 연예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진은 공연 실황 다큐 영화 ‘바람 따라 만나리: 김호중의 계절’의 한 장면. CJ CGV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듯한 은폐 시도를 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김호중 사건’을 두고 방송·연예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일관하며 스스로 화를 키운 행동이 납득되지 않아서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은 지난 9일 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도로에서 음주 뺑소니 사고를 냈다. 이후로도 운전자 바꿔치기, 공황장애 호소 등 갖가지 방법으로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거짓말이 탄로 나면 또 다른 거짓말이 이어졌다. 그는 음주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가 사고 열흘 만인 지난 19일 인정했다.



한 연예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사고 당시에는 당황해서 현장을 이탈했더라도 잘못을 인지한 순간 대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과부터 한다. 지금 당장은 위약금 등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연예인으로서 복귀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서다”라며 “빠른 사과는 복귀를 위한 보험인데, 아티스트를 설득해야 할 소속사까지 가세해서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한 일은 기이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피식대학’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호중 사례처럼 연예계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에는 유명해지면 언행부터 단속했고 주로 무명 시절 말과 행동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는데, 요새는 공인으로서 최소한의 자기 규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예능상 수상으로 위상이 높아진 인기 유튜버 피식대학이 최근 유튜브 콘텐츠에서“할머니 살 뜯어 먹는 맛” 운운하는 혐오 발언을 쏟아낸 것도 마찬가지다. 방송인이자 반려동물 훈련사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가 회사 직원들을 괴롭히고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두고도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누려온 강씨가 잘못 처신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옳고 그름은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인 ‘탈진실’ ‘탈정의’ 흐름이 연예계에서는 상식과 교양의 실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팬덤 위주 ‘장사’로 바뀐 엔터산업 환경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과거에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국민 가수, 국민 배우를 꿈꿨지만 요즘은 팬과 아티스트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면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이해해줄 거라는 그릇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호중 사건 발생 직후 팬카페에는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가 음주를 자백한 이후 출연 예정이던 공연의 티켓 취소가 쏟아진 뒤 강성 팬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취소 표를 사들이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김호중이 공연을 강행하는 것은 위약금 부담 영향이 크겠지만, 팬덤을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며 “지금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건 팬밖에 없으니 팬들과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공연 중에 자신의 심정을 호소하면서 결속력을 다지려는 목적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김호중은 음주 자백 이후 팬카페에 “이렇게 많은 식구가 아파하는데 (…) 조사가 끝나면 이곳 집으로 돌아오겠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방송 출연을 못하면 연예인 생명이 끝났던 과거와 다른 미디어 환경 변화 탓이 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개인 유튜브 채널이 텔레비전(TV) 예능프로그램 이상의 인기를 얻는 시대다. 팬덤만 있으면 공연이나 유튜브 등으로 인기를 유지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불타는 트롯맨’(MBN) 출연 도중 학교폭력 가해 의혹이 제기되어 중도 하차했던 황영웅도 방송 출연만 하지 않을 뿐, 현재 전국을 돌며 콘서트를 하고 있다.



최근 비비시(BBC)의‘버닝썬’ 다큐에서는 “케이팝 스타가 하나의 권력이 됐다”고 짚기도 했다. 버닝썬 사건’의 핵심 인물인 빅뱅 출신 승리는 출소 뒤 여전히 빅뱅 이름을 내세워 국외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강형욱이 직원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개는 훌륭하다’ 출연 모습. 한국방송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팬덤만 맹신하다가는 연예인 자신은 물론 연예계를 더욱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덕현 평론가는 “연예계에서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아무리 자숙해도 돌아올 수 없던 사안은 거짓말이었다. 김호중이 놓친 건 바로 이 신뢰를 잃어버리게 한 거짓말을 줄줄이 늘어놨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콘크리트 팬덤이라고 해도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연예인의 유명세는 대중의 정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기준 적용이 필요하다”며 “김호중 사건처럼, 강력한 팬덤을 방패로 범죄를 축소·은폐하는 것은 2차 범죄이자, 사회적 경각심을 희석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