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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中에 조선역사 오류 수정 요구… 영조의 활약상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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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300년 맞아 온라인 전시회

‘속광국지경록’ 등 자료 처음 공개

동아일보

영조가 1771년 청나라의 역사서에 조선의 왕통이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기록을 모아 엮은 책 ‘속광국지경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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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이후로 패악한 말이 소멸되고 다시 (올바른 기록이) 해외에 밝혀졌으며 도깨비들이 천하에 스스로 숨었으니 어찌 경사를 나타내지 않겠느냐.”

1771년 편찬된 ‘속광국지경록(續光國志慶錄)’에 나오는 조선 영조(재위 1724∼1776년)의 발언이다. 영조는 청나라 역사서 명기집략(明紀輯略)에 조선의 왕통이 잘못 기록된 사실(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라는 기록)을 발견하고 사신을 보내 이를 바로잡도록 했다. 영조가 신하들에게 한 발언에서 잘못된 역사 기록을 수정한 데 따른 기쁨과 만족감이 드러난다. 조공체제로 운영되던 당시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중국의 왕위 계승 인식은 상대국에는 정권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영조 즉위 300주년을 기념해 24일부터 여는 ‘조선의 중흥군주 영조대왕’ 온라인 전시에서는 속광국지경록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영조가 전국 관찰사와 수령들의 민은시(民隱詩·백성이 악정에 고통을 받는 것을 읊은 시)를 취합해 1765년 편찬한 ‘양도팔도민은시(兩都八道民隱詩)’도 처음 공개된다.

총 86건의 영조 관련 자료 중에는 그의 탕평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영조가 탕평을 지지하는 신하들의 글을 엮어 1772년 편찬한 ‘영수백세록’이 대표적이다. 영조는 탕평을 반대하고 붕당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영의정 김치인(1716∼1790)을 유배시킨 뒤 신하들에게 탕평을 찬미하는 글을 짓게 했다. 또 “팔순의 사업을 나에게 물으면 내심 민망하니 어떻게 답할까?”라며 스스로의 업적에 대해 질문을 던진 ‘어제문업(御製問業)’도 눈길을 끈다.

한중연은 “영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했던 군주”라며 “자신이 지은 글을 통해 신하와 백성들에게 주요 정책을 설득하는 군사(君師)로서의 면모와 인간적으로 교감하려는 자상한 면모를 두루 갖췄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장서각 온라인 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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